가격이 저렴하면서 품질도 좋은 '칩 시크(cheap-chic)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저가항공의 국내 여객시장 점유율은 2005년 0.1%에서 지난해 34.9%로 높아졌고,국내 중저가 화장품 매출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9.3%씩 증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중저가 패션 브랜드가 '칩 시크' 붐을 이끌고 있다.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로 알려진 LVMH와 구찌 등으로 유명한 PPR의 매출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년 대비 0.7%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자라 H&M 유니클로 등 중저가 브랜드 매출은 25%나 늘었다.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제품을 선호하는 실용적 소비문화와 다양한 유통 채널의 등장,신흥국 중산층 증가 등이 칩 시크 상품의 인기 배경이다.

칩 시크의 특징은 핵심가치를 극대화한 상품 전략과 비용을 최소화하는 탄력적 사업구조로 요약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한 제품에 가능하면 여러 가지 기능과 서비스를 담고 싶어한다. 하지만 오늘날 소비자들은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제품보다는 한 가지라도 꼭 필요한 기능을 정확히 수행하는 제품을 선호한다. 아일랜드의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는 단거리 여행객은 다른 무엇보다도 저렴한 가격을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가격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 기내 화장실을 줄이는 대신 좌석 수를 늘렸고,공항의 체크인 카운터도 없애 항공료를 낮췄다.

저가 제품이라도 핵심가치의 경쟁력을 극대화하면 다른 제품과 차별화하는 것은 물론 고가 제품보다도 우수한 품질을 갖출 수 있다. 의류기업 유니클로가 섬유기업 도레이와 함께 개발한 발열의류 소재 '히트테크'는 겨울철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칩 시크로 성공한 기업들은 핵심 기능만 본사에서 담당하고 부품 및 소재 공급과 생산 등은 외부에 맡기는 네트워크형 사업구조를 통해 비용을 줄인다. 지난해 매출 30억달러를 올린 미국 TV업체 비지오의 임직원 수는 196명에 불과하다. 이 회사는 설계와 생산,디자인,유통 등 대부분의 업무를 외부에 위탁해 처리한다. 또 직영매장이나 가전 전문매장이 아닌 대형 할인점을 주요 유통채널로 활용,판매관리비를 업계 평균 대비 10% 수준으로 낮췄다.

칩 시크로 성공한 기업의 과제는 상품 다각화와 브랜드 인지도 제고다. 중저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입증되면 기존 선두 기업의 견제가 시작되고 비슷한 사업 모델을 구축한 새로운 경쟁자도 등장한다. 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시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상품 다각화와 브랜드 인지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인 미샤는 한때 매출이 급감하자 기능성 제품과 프리미엄 제품을 내놓고 톱스타를 광고 모델로 기용,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과거의 매출을 회복했다.

패션에서 시작된 칩 시크 붐은 이제 전자제품을 비롯해 유통 항공 금융 등 전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격과 품질은 상충관계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극복한 칩 시크는 업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소비자의 선호도와 유통 환경의 변화를 읽어낸다면 칩 시크를 통한 새로운 기회는 무궁무진하다.

하송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song.ha@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