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관리공단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초과학기술연구회 등 57개 공기업(준정부기관 · 기타 공공기관 포함) 기관장들이 해외 출장 때마다 비행기 1등석을 이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과다비용 낭비 사례라며 '기관장들의 1등석 탑승을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기업 예산집행지침'을 마련해 해당 공기업들에 전달했다. 공기업 기관장들이 자기 돈이 아니라고 해서 값비싼 1등석을 거리낌없이 타는 것도 문제지만,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일률적으로 1등석 탑승 금지를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행안부는 작년 말 전체 공기업 286곳을 대상으로 기관장 여비지급 실태를 조사했다. 지난해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일부 기관장들의 1등석 이용이 공기업 방만 운영 사례라는 지적을 받은 데 따른 것이다.

조사 결과 57개 공기업 기관장들이 1등석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초과학기술연구회 국립공원관리공단 대한체육회 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이 대표적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직원이 수만명인 대형 공기업 기관장들은 대부분 2등석(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직원 수가 적은 소규모 공기업 기관장들이 1등석을 관행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작년 초 '여비지급 처리지침'까지 바꿔 이사장 출장시 항공기 좌석을 비즈니스석에서 1등석으로 상향 조정해 장거리 출장시 항공료로만 1000만원 이상씩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지침 재개정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아직까지도 바꾸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정책을 담당하는 재정부는 이에 따라 24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공기업 기관장의 1등석 이용을 아예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올해 예산집행지침안을 의결했다. 지침안은 모든 공기업들은 기관장의 해외 출장시 차관급 수준에 맞춰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것을 내부 여비규정에 명시했다. 현재 공무원 여비규정에는 국무위원급은 1등석,차관부터 국장급까지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공기업들은 정부 산하 기관장이라고 해서 비행기 좌석 등급까지 정부가 일률적으로 지정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내놓고 있다. 공기업의 한 관계자는 "사업상 필요에 따라 1등석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무조건 비즈니스석으로 지정하는 것은 과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기업 기관장들이 예외적으로 1등석을 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주무부처 장관을 수행하는 등'으로 재정부가 제시한 것도 지나치게 편협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재정부는 또 공기업 예산집행지침안에서 공기업의 직원들에 대한 과도한 복리후생 지원도 제한키로 했다. 예컨대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전 직원의 통신비용을 일괄지급했으나 앞으로 이 같은 지원은 할 수 없다.

한국조폐공사 한국마사회 등 7개 공기업은 최근 몇년간 창립기념으로 퇴직예정자와 장기근속자에게 포상비 명목으로 많게는 1인당 순금 45돈(시가 810만원어치)을 지급했으나 이런 관행도 금지된다. 정부는 또 각종 수당이나 급여성 복리후생비를 신설할 때 이사회의 심의 · 의결을 거치도록 의무화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