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4월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이 지휘하는 함대가 남아메리카 해안에 도착했을 때,그곳에는 석기시대 수준의 주민들이 부족 단위를 이뤄 살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곧 이 광대무변의 땅을 자신의 영토로 선언했다. 브라질이라 불리게 된 이 땅은 19세기에 독립할 때까지 포르투갈 식민지로 남았다.

브라질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늘 안개에 싸여 있어 사람 눈에 띄지 않다가 7년에 하루만 모습을 보인다는 아일랜드 신화 속의 섬 브라질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견해도 있지만,브라질나무에서 국명이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유럽 선원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브라질나무가 널려 있었다. 원래 브라질나무란 아시아에서 자라며 붉은색 염료 물질을 가진 다른 나무를 가리켰다. 가루 형태의 이 염료는 고급 직물 염색에 쓰이는 고가 상품이었다. 그런데 남아메리카에서 비슷한 종류의 나무를 발견한 데다 여기에서 더 고급스러운 염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포르투갈 상인들은 이 나무를 베어 유럽에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나무를 브라질나무라 부르게 됐고,조만간 이 지역의 이름이 아예 브라질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어로는 이 나무를 파우 브라질(pau brazil)이라 하는데,'파우'는 막대기라는 뜻이고 '브라질'은 잉걸불을 가리키는 '브라사'(brasa)에서 나왔다고 한다. 페르남부쿠 지방에서 많이 난다고 해서 파우 페르남부쿠라고도 부른다.

사실 요즘처럼 많은 색을 사용하게 된 것은 19세기 화학공업이 발달하면서 수많은 인공 염료를 개발한 이후의 일이다. 그 전에는 나무 곤충 조개 광물 등에서 얻은 천연염료로 색을 냈는데,이런 염료들은 대개 지독히 힘든 노동을 통해 아주 소량만 얻는 귀중한 물질이었다. 그 때문에 아름다운 색깔은 그 자체가 부와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국왕이나 대귀족,고위직 사제들만 특정한 색의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제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엄청난 부를 쌓은 상인이 귀족 색깔의 옷을 입으려 하고,이에 대해 귀족들이 '사치제한법' 같은 것을 만들어 한사코 막으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로마 황제 네로는 자주색이 황제의 색이므로 누구도 이 색을 사용하지 못하며 이를 어기면 사형에 처한다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 색깔이 신분 · 계급의 문제가 된 것이다.

브라질나무에서 얻는 붉은색(Natural Red 24) 염료인 브라질린(brazilin)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 인기를 얻던 최고급 물질이었다. 이 염료는 고급 직물의 염색에도 쓰이고 화가의 물감이나 붉은 잉크에도 들어갔다. 문제는 이 나무를 가공하는 과정이 도저히 사람이 하기 힘든 고역이라는 데 있었다. 염료를 만들려면 대패질을 해서 가루를 만들어야 하는데,이 나무가 너무 단단해 대패질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일반인 중에 월급을 받고 이 일을 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네덜란드에서는 이 일을 교도소 재소자에게 시킨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사역의 원칙은 아주 단순했다. 재소자들은 하루종일 브라질나무를 대패질해 톱밥을 만드는데,저녁에 그 양을 재서 규정량을 넘기면 밥이 나오고 그렇지 못하면 굶는 것이었다. 불쌍한 재소자들은 오직 밥을 타먹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대패질을 해야 했다. 이때 날리는 붉은 가루가 땀에 섞이면 마치 피땀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들이 입는 우아한 벨벳 의류 뒤에는 이처럼 가혹한 착취의 역사가 어려 있다.

인력뿐 아니라 자연의 개발과 착취 역시 과도한 지경에 이르렀다. 브라질 염료가 갈수록 인기를 얻자 이 나무가 대량으로 벌채됐다. 이는 원래 포르투갈 국왕의 독점 사업이었지만 무허가 사업자들도 달려들었고,이 나무를 운송하는 선박을 노리는 해적들도 출몰했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벌채를 하다 보니 해안가와 내륙지방 곳곳에 자생하던 이 나무들도 18세기부터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브라질나무는 소위 후계림(後繼林 · 화재나 나무 전염병,벌채 등 숲을 교란시키는 요인이 발생한 이후 오랜 기간이 지나 원래 상태로 돌아갈 때까지 중간적인 상태에 있는 숲)에서 잘 자라는 수종이어서 생장 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다.

자연 상태라면 그런 조건을 갖춘 곳에서 서서히 자라나겠지만 대량으로 벌채하고 난 후 인공적으로 숲을 복원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현재 브라질나무는 세계자연보존연맹에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돼 있다.

브라질나무는 현악기의 활을 만드는 최적의 재료이기도 하다. 조만간 이 나무의 거래가 공식적으로 금지될 가능성이 있는데,이렇게 되면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의 활을 다른 재료로 만들어야 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국제 페르남부쿠나무 보존계획 같은 기구에서 이 나무의 보존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실 이 기구의 회원들 대부분은 현악기 활 제조업자들이다. 만일 이것마저 실패로 끝나면 탄소섬유로 만든 활을 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혹시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건 아닐까.

500년 전 포르투갈 선원이 브라질 해안에 도착한 사건은 귀족들의 옷을 우아한 색으로 물들이는 일로부터 불쌍한 재소자들의 피땀 어린 노동을 거쳐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끝에서 춤추는 활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들을 불러일으켰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