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저축은행이 마침내 수술대에 올랐다. 금융당국은 부실덩어리로 변모한 삼화저축은행에 대해 경영개선명령(영업정지 6개월)을 내리고 매각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업계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 막을 올린 것이다.

금융당국이 칼을 빼든 것은 저축은행 부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는 최근 실시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만 봐도 한눈에 파악된다. 지난해 9월 말을 기준으로 실시된 이 테스트에서 조만간 파산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곳이 중대형 저축은행을 포함,모두 8개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곳도 10여개에 달한다.

저축은행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고위험 대출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영업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탓이다. 한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부동산 경기가 무너지면서 재앙으로 급변했다. 실제 PF 대출 부실은 심각하기 짝이 없다. 2009년 말 0.6%에 그쳤던 연체율이 지난해 말엔 24.3%로 껑충 뛰어올랐다. 손실액도 올해 말엔 3조원을 넘을 것이란 게 금융당국의 추산이다. 여기에다 숨겨진 부실까지 감안하면 부실 규모는 한층 확대될 수밖에 없다. PF 대출 잔액이 아직도 12조원에 달하는 상황이고 보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저축은행 업계에는 이미 많은 공적 자금 수혈이 이뤄졌다.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부실 PF 대출을 사들이는 등의 방법을 통해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공적자금과 예금보험기금이 17조원 이상 투입됐다. 그런데도 부실이 다 정리되지 않아 올해도 3조5000억원의 구조조정 기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무려 20조원 이상을 집어삼킨 셈이다.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다.

문제는 추가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해도 정상화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PF 대출 잔액 12조원 중 절반 이상이 회수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새로 준비한 3조5000억원마저 부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당국이 금융지주회사들로 하여금 저축은행을 인수토록 독려하고, 예금보험기금 내에 공동계정을 만들어 이 자금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강구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칼을 빼든 이상 부실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차제에 1인당 5000만원으로 돼 있는 예금보호 한도를 업태별로 차등화해 경영 상태가 나쁜 곳은 자연 도태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확실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경영진이 도대체 어떻게 경영을 했기에 부실덩어리가 됐는지,감사는 제대로 했는지 등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특히 부실 사업장을 정상 사업장인 것처럼 포장해 대출을 늘리고,그 과정에서 대주주들이 불법 · 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회사 돈을 빼돌렸다는 소문도 파다한 만큼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빈틈없이 조사하고 횡령 · 배임 등의 혐의가 확인되면 반드시 민 · 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관련 정책을 수립 · 집행해온 공무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저축은행이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은 정책 실패와 관리 · 감독 부실에도 큰 원인이 있다. 금융당국은 2006년 8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 8% 이상,고정이하 여신 비율 8% 이하인 곳을 '8 · 8클럽'으로 분류하고,이들에 대해선 최고 80억원이던 대출한도를 풀어줘 PF 대출 쏠림 현상을 유발했다. 이로 인해 저축은행 경영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국민 세금이 쏟아져 들어가고,저축은행 부실과는 무관한 은행업계 팔까지 비틀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도 감독당국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온갖 권한과 힘을 행사하며 업계를 떡 주무르듯 하는 공무원들이 잘못된 결과에 대해선 나몰라라 한다면 그것만큼 후안무치한 일도 없다.

이봉구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