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공포…어쩌다 이 지경까지] G20 의식한 MB '출구' 늦춰…정부는 성장 외치며 물가대응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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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인도 등 亞 인플레 쓰나미 무시
관료들, 유가 올라도 高환율 고집
'일시적'이라던 농산물 파동 계속
관료들, 유가 올라도 高환율 고집
'일시적'이라던 농산물 파동 계속
물가 불안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당장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에 육박하고 1분기로는 4%를 웃돌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정책 대응을 제대로 했다면 물가불안의 수위를 상당폭 낮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장 곳곳에서 나오는 물가불안의 신호들을 정부가 애써 무시했거나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① 경기 회복 따른 수요 압력 경시했다
지난해 1분기 한국 경제는 전년 동기 대비 8.1% 성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었다. 한국은행은 이를 반영해 2010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4.6%에서 5.2%로 4월 상향 조정했다.
작년 2분기에도 성장률은 7.2%에 이르러 두 분기 연속 '서프라이즈'를 이뤘다. 한은은 5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수요 압력이 점차 증대될 것'이란 문구를 처음으로 넣었으며 7월부턴 '하반기 이후 물가상승폭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은은 5월 이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에 대한 수위를 점차 높여나갔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10월까지도 부동산 침체,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경제 회복의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며 기준금리의 조속한 정상화에 사실상 반대했다. 재정부 차관은 금통위에서 열석발언권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꾸준히 되풀이해 물가안정을 위한 금통위의 선제적 대응을 방해했다. 재정부는 특히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3% 수준으로 제시해 안이한 인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② 아시아 인플레 쓰나미 무시했다
아시아에서 물가상승이 문제가 된 것은 최근이 아니다. 지난해 초부터 이미 이슈가 됐다. 인도의 경우 인플레의 잣대로 쓰이는 도매물가 상승률이 2009년 12월 9%대에 진입한 이후 지난해 3월엔 9.9%까지 올랐다. 인도는 지난해 2월부터 정책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도 같은 양상을 나타냈다. 인플레이션보다는 자산가격 급등이 나타난 호주는 2009년 10월부터 정책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해 모두 7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중국도 지난해 초부터 생필품 가격이 뛰자 은행의 대출을 억제하기 시작했으며 지급준비율을 높이는 등 긴축에 나섰다. 한국의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육박하고 아시아 국가가 50%에 이르러 아시아 물가상승이 한국에도 닥칠 것은 예고됐는데도 정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③ 농산물 파동 일시 사안으로 오판했다
8~9월 배추를 중심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는데도 정부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중수 한은 총재도 10월14일 기자회견에서 "배추 등 채소류의 가격 급등을 제거하면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9% 수준"이라며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채소류를 중심으로 한 신선식품의 상승률은 9월 이후에도 두 자릿수를 기록하며 고공비행을 이어갔다. 지난달에도 생산자물가 기준으로 채소류는 41.4%,과실류는 81.7% 뛰었다. 한은 실무진은 "물가라는 것은 한번 급등하고 나면 곧바로 떨어지지 않는 게 일반적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④ 고환율만 지나치게 고집했다
최근 물가 급등을 야기하는 주범은 원유 등 국제 원자재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국제 원유 가격은 지난해 9월까지만 하더라도 배럴당 70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경제회복에 따른 수요가 가파르게 늘자 8월부터 치솟기 시작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월평균 기준으로 9월 배럴당 75.2달러에서 10월 80.28달러,11월,83.58달러,12월 88.95달러로 뛰었으며 올 들어선 평균 91.9달러를 기록 중이다. 철광석 유연탄 니켈 구리 등 다른 원자재도 뜀박질하기는 마찬가지다.
해외발 인플레이션 압박을 완화시키기 위해선 환율이 하락할 필요가 있는데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경제 펀더멘털 대비 높은 수준의 환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강만수 대통령 경제특보 겸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 등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시장에선 보고 있다.
⑤ G20에 취해 있었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화두는 출구전략이었다. 경제가 급반등하고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취했던 각종 정책을 신속히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 5.25%에서 연 2.0%로 낮췄던 기준금리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연 2.5%로 인상되는 데 그쳤다. 지난 13일 인상까지 합쳐야 세 번이다. 원 · 달러 환율도 하락 추세이긴 하지만 민간에서 추정하는 적정환율 1030~1070원 수준에 비하면 여전히 높다.
이처럼 출구전략이 더디게 진행된 것은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역할을 수행하고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도취한 때문이라는 비판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내내 '국제공조'를 강조했다. 한 연구소 관계자는 "한국은 경제상황이 신흥국에 가까운데도 회복이 더딘 선진국과 정책보조를 맞추려 했다"며 "이로 인해 출구전략 타이밍에서 실기했으며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