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현대자동차는 울산공장에 단조사업부를 신설하기로 했다. 좋은 자동차를 만들려면 쇠를 두드려 부품을 만드는 '단조' 기술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 쇠의 '물성(物性)'을 이해하는 직원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형(型)단조 기술에 관한 한 국내 최고로 평가받는 중소기업에 도움을 청했다. 직원들을 석 달간 이곳에 보내 합숙훈련을 시킨 끝에 비로소 현대차는 단조사업부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 현대차 직원들이 단조 기술을 배운 곳이 '한일단조'다. 1966년 설립된 이 회사는 '단조사관학교'로 불린다. 국내 단조 관련 기업들의 중역 중 적어도 한 명 이상은 한일단조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성호 한일단조 대표(43)는 "45년간 남들과 다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경쟁력의 비결"이라며 "올해는 상용차용 단조 부품에 이어 원전,가스터빈 등 중공업 분야에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용차 구동장치 핵심부품 국내 1위

한일단조는 창사 이래 단조 제품만 만들어 왔다. 주요 사업분야는 버스,대형트럭,픽업트럭,SUV 등 상용차용 부품이다. 여기에 1973년부터 박격포탄,미사일 등 방산용 부품도 만들고 있다. 특히 상용차 부품은 국내외에서 최고로 평가받는다. 구동장치에 쓰이는 핵심 부품인 '스핀들'은 국내 시장점유율 75%,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지역 내 점유율 70%에 달한다.

이 대표는 "북중미에서 생산되는 상용차 10대 중 7대에 우리 부품이 쓰인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구동장치용 부품인 '액셀 샤프트'는 국내 시장의 90%,대형버스 · 트럭용 '링기어'는 국내 시장의 85%를 점유할 정도다.

최근엔 또 한 개의 1등 제품을 만들어 냈다. 픽업트럭 등 중소형 상용차 구동장치에 쓰이는 '하이포이드 기어'다. 기존 기어는 단조 공법으로 원반 모양의 쇳덩이를 만든 뒤 절삭기를 이용해 기어의 톱니를 깎는다. 이에 비해 신제품은 톱니까지 단조로 만든다. 기존 기어에 비해 톱니의 강도가 뛰어나고,고가의 절삭공구가 없어도 되기 때문에 생산비를 줄일 수 있다. 세계 최대 상용차 부품업체 다나(DANA)를 통해 이달부터 포드자동차에 공급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하이포이드 기어 시장 규모만 2000억원 정도"라며 "도요타자동차에서 제품 개발을 의뢰해 왔고 중국 둥펑자동차와도 공급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또 '온간밀폐단조' 공법을 이용해 기존 부품보다 생산성을 30% 이상 높일 수 있는 동력전달장치 부품인 '크로스 저널'과 '디프 스파이더'도 올 하반기부터 양산한다.

◆원전부품 인도 진출…두산과 협력

한일단조는 올해 새로운 사업분야에 뛰어든다. 제2의 성장동력이 될 원전,가스터빈 등 중공업용 부품 개발에 주력하기로 한 것.이를 위해 상하좌우에서 4개의 펀치로 초당 3회씩 압력을 가해 단조할 수 있는 '래디얼 포징' 설비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자유단조(선박용 등 수t~수십t짜리 부품을 만드는 방식)와 형단조(일정한 모양의 금형을 이용해 정밀부품을 만드는 방식) 중간 규모의 부품을 만들 수 있다.

이 대표는 "초내열합금을 이용해 만드는 원전용 부품,선박엔진용 피스톤,발전소용 가스터빈 등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던 초정밀 · 고강도 부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작년 말 인도 원자력부품 공급업체 MTAR에 초도 물량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고 앞으로 300억원 규모의 부품공급 계약을 맺을 계획"이라며 "국내에선 두산중공업과 가스터빈,원전용 부품을 개발하는 협력사업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태국법인 매출을 합쳐 1500억원을 올리고 내년에는 2100억원 이상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창원=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