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시장이 25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2005년부터 본격 설립된 PEF 중 일부는 최근 높은 수익을 내며 차익 실현(exit)에 성공했고 투자 대상 기업들도 PEF의 자금 수혈로 기사회생에 성공한 '윈윈(win-win)' 사례들이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PEF 덕에 워크아웃 기업이 상장사로

지난달 26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반도체 패키징업체 시그네틱스는 3년 전만 해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상태였다. 이 회사는 고려아연 영풍문고 등 알짜 기업을 거느린 영풍그룹 산하였지만 계열사의 독자 생존을 강조하는 장형진 그룹 회장의 경영원칙 때문에 그룹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6월 KTB투자증권이 설립한 PEF 'IBK-KTB사모투자전문회사'가 시그네틱스 측에 지분 투자를 제안했다. 배진환 KTB증권 PE2본부장은 "내부적으로도 시그네틱스의 기업공개(IPO)가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많았지만 영업구조가 국내와 해외,메모리와 비메모리 부문이 균형을 갖춰 재무구조만 개선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KTB증권 PEF는 174억원을 전환사채(CB)로,50억원을 전환우선상환주로 투자했다.

투자 직후 KTB 측은 채권단을 설득해 시그네틱스를 워크아웃에서 졸업시켰다. 투자 족쇄가 풀린 시그네틱스는 신규 설비투자에 나섰고 영업도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 2008년 반도체산업이 최악의 침체를 맞았지만 시그네틱스는 꾸준히 흑자 기조를 유지했다.

KTB 측은 장 회장을 설득해 영풍그룹을 1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시켰다. KTB 측은 CB 투자액 174억원 중 100억원을 상환받고 나머지 74억원은 출자 전환했다. 그 결과 시그네틱스의 부채비율은 238%에서 117%로 낮아졌고,한국거래소 상장심사를 무난히 통과했다. KTB는 3년 만에 160%의 수익률을 올렸다.

◆부도 기업 인수해 매출 10배로

지난달 GS그룹에 팔린 디케이티(옛 대경테크노스)는 법정관리 중이던 기업을 PEF 전문 운용사 큐캐피탈이 경영권을 인수해 정상화시킨 경우다. 큐캐피탈은 2005년 울산지방법원의 공개입찰에서 디케이티를 250억원에 사들였다.

큐캐피탈은 두산메카텍 출신 김정신씨를 디케이티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고,해외 PEF에서 유치한 자금으로 폐열회수보일러 진출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때마침 석유화학 호황이 찾아와 수주가 급증해 법정관리 1년3개월 만에 졸업했다. 2005년 143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663억원으로 12배가량 급증했다.

큐캐피탈은 디케이티 지분 55.4%를 GS글로벌에 넘기는 본계약을 지난달 19일 체결했다. 큐캐피탈은 이 투자로 100%의 차익을 남겼고,디케이티는 GS그룹에 편입돼 본격 도약을 기대하게 됐다.

◆산업은행 PEF는 만도 재상장 도와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숙원이던 옛 계열사 만도를 되찾아 지난 5월 재상장시킨 데도 산업은행이 설립한 PEF 'KDB밸류 제2호 사모투자전문회사'의 공이 컸다. 정 회장은 2005년부터 홍콩 PEF 선세이지에서 만도를 되찾아오기 위해 외국계 투자은행(IB)의 차입을 계획하고 있었다. 이때 산업은행 측이 "차입보다는 PEF의 지분 투자를 받는 것이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2000억원 투자를 제안했고,정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2008년 만도가 한라그룹 품으로 돌아온 이후 산은 PEF는 사외이사와 감사를 파견해 경영에 적극 참여했고,시설자금 조달도 지원했다. 권영훈 산업은행 차장은 "만도가 IPO를 위해 해외설명회에 나갔을 때도 산업은행이 지분 20%를 참여했다는 점이 어필했다"고 설명했다. 산은 PEF는 만도가 상장할 때 구주 매출 등으로 지분을 처분해 100%의 수익을 남겼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 사모투자펀드(PEF)

private equity fund.넓은 의미의 사모펀드는 자본시장법상 50인 미만의 소수 투자자들이 가입한 펀드로,공모펀드와 달리 투자 대상,투자 비중 등에 제약이 없다. 사모펀드의 일종인 PEF는 소수의 기관과 '큰손' 투자자들로부터 수백억원에서 수조원의 자금을 모아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매입(보통 10% 이상)하고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차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