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 정신은 잠시 접어두자.사무라이 정신으로 동남아 시장을 더 넓혀야 해."(해외개척팀 간부) "방글라데시와 나이지리아 같은 저소득층 시장에서 통하려면 동전 한닢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겠어."(기술협력팀 간부)

일본 식품업체 아지노모토사의 도쿄 본부 전략기획실.지난해 초 사무실에 모인 핵심 간부들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3000달러 이하의 빈곤층(BoP · Bottom of Pyramid)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커다란 칠판엔 방글라데시 4인 기준 일반 가정의 수입과 지출 내역이 적혀 있었다.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에수미아티 빈티 슬랑 무스타파의 월평균 임금은 5000엔(6만8000원).한 달 식비 2000엔에 교육비와 통신료 각각 600엔과 200엔,월세 1400엔 등을 지출하니 800엔가량이 남는다.

최소한의 생활을 하기에도 빠듯한 이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아지노모토는 조미료를 소량으로 만들어 싸게 파는 전략을 택했다. 방글라데시에 0.9g짜리 조미료를 0.5엔에 내놓게 된 배경이다. 1g짜리 미국산 조미료의 절반가격이다. 아지노모토 서울사무소가 전한 해외 빈곤층 시장 공략기엔 기술력 있는 기업도 저가와 소량 판매로 승부를 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아지노모토 조미료는 100억봉지 이상 팔렸다. 전년 대비 두 배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빈국(貧國) 시장에 띄운 승부수

한국의 대상그룹이 만든 발효조미료 '미원(味元)'의 원조가 아지노모토사의 조미료 '아지노모토(味の素)'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08년 이케다 기쿠나에(池田菊苗) 도쿄대 교수는 우동에 다시마를 넣으면 국물 맛이 한결 나아졌다는 것에 착안,다시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아지노모토는 이케다 교수가 개발한 다시마 처리액의 흰색 글루타민산 결정을 다시 가루 형태로 만들어 아지노모토란 이름으로 1909년 5월 시판했다. 이후 동화화성공업(대상그룹의 전신)이 이를 기초로 1956년 미원을 내놓았다. 조미료 · 가공식품을 주력으로 시작한 아지노모토는 현재 냉동식품과 음료 · 아미노산 · 의약 사업분야까지 아우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아지노모토의 지난해 매출은 1조1708억엔(16조500억원),영업이익은 640억엔(8800억원)이었다. 매출은 전년도(1조1904억엔)보다 줄었지만 영업이익(408억엔)은 57% 늘었다. 올 들어선 매출도 턴어라운드했다. 1분기(4~6월) 매출이 3043억엔(4조1000억원),영업이익 218억엔(298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6%,43.8% 증가했다.

산케이신문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아지노모토가 성장한 비결로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사무라이적 도전정신이 맞물려 급부상하는 해외 빈곤층 시장을 선점한 것을 꼽았다. 2000년 초 한 자릿수에 그쳤던 아시아 지역 사업의 매출 비중이 지난해 13%로 높아진 것도 이 덕분이다. 산케이는 "아지노모토는 제품을 싸게 공급함으로써 소비자의 실질적인 구매력을 높여 고객층을 넓히는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필리핀엔 2.2g짜리 조미료 제품을 1엔에,나이지리아엔 3g짜리 3봉지를 3엔에 각각 시판한 게 대표적이다. 일본 진열대에 500g과 1㎏짜리를 내놓는 것과 대조된다. 일본인들로부터 '일본 10대 발명품'으로 평가 받는 아지노모토 조미료지만 저가 마케팅으로 해외 저소득층 시장을 파고들어온 것이다.

◆현지 문화를 배려한 마케팅

해외 시장을 겨냥한 3단계 침투 전략은 이 회사만의 독특한 경영 노하우다. 1단계에선 1~2엔의 저가 · 소량의 아지노모토를 소개하면서 브랜드와 판매망을 구축한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주 타깃이다. 대체로 동네 가게를 상대로 영업을 한다. 2단계에선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이 요구하는 웰빙 문화에 맞춘 천연 조미료로 공략한다. 마파두부 등 반찬의 맛을 높여 주는 기능성 조미료 제품을 내놓고 생필품으로 자리매김하는 단계다. 3단계가 되면 저가 이미지를 벗고 '즉석 면' 등 가공식품과 고부가가치 상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한다. 일본 특유의 우동면을 냉동가공해 파는 게 대표적이다. 아지노모토식 마케팅은 해외 빈곤층 시장에 뒤늦게 뛰어든 일본 후발업체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서비스 수준이 상대적으로 낙후된 빈곤층 시장에 맞는 전략도 주효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영업사원만 총 1200여명을 고용해 매장 교육이라는 임무를 맡겼다. 3인 1조로 편성된 이들 영업사원은 매일 판매점들을 다니며 물건 배달과 영업 기법 알리기,청소 등의 일을 한다. 1개조가 방문하는 점포는 하루 평균 40곳에 달한다. 이 모델은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시장에도 적용될 만큼 성공했다고 회사 측은 자평한다. 현지 친화적인 마케팅도 진행했다. 베트남에서 돼지 뼈를 원료로 만든 '아지곤'이란 조미료를 내놔 히트를 친 게 대표적이다. 돼지 대퇴골 요리를 잘하는 여인이 현명한 것으로 평가받는 현지의 음식문화를 감안한 현지화 사례다.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도 분발하고 있다. 미국 현지 공장의 냉동쌀밥 생산 능력을 지난해 말 8000t에서 최근 1만8000t으로 2배 늘렸다. 미국 젊은 층의 일본음식 선호 현상으로 현지 실적이 개선된 데다 현지의 음식 체인 업체들과 손잡고 일본식 쇠고기덮밥 전문점을 조만간 선보인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토 마사토시 사장은 "해외 공략은 우리 회사의 DNA"라며 "차별적인 전략으로 일본의 맛을 세계에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설립 100주년을 맞아 제2의 도약을 선언한 아지노모토는 2016년까지 해외 시장을 현재보다 30개국 늘어난 총 130개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해외 시장 비중을 50%에서 6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