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독자의 구매 영향력 및 40~60대 독자의 비중 확대.'

교보문고가 올해의 연간 도서판매 동향 및 베스트셀러를 분석한 결과 뽑아낸 트렌드다.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한 책이 연간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1만5000원)와 현재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샌델 교수의 또다른 책 《왜 도덕인가》(한국경제신문),제러미 리프킨 펜실베이니아대 워튼경영대학원 교수의 《공감의 시대》 등이다.

현재 65만부가 출고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경우 지난 5월 출간 직후부터 남성이 전체 독자의 60%를 차지하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지난달에 나온 샌델 교수의 또다른 책 《왜 도덕인가》(한국경제신문)도 출간 한 달 만에 7만부 이상 팔렸다. 지난 10월 말 출간된 이후 두 달도 되지 않아 20만부 이상 출고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전체 독자 중 30~40대가 65~70%,남성이 70%를 차지한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이들 책에 남성 독자들이 공감하는 것은 저자들의 명성뿐만 아니라 그들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 때문이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양한 상황과 사례를 놓고 무엇이 정의인지,상반된 가치와 주장들 속에서 무엇이 최선의 선택인지 묻는다.

가령 시속 100㎞로 질주하는 기관차 선로에서 인부 5명이 작업 중이다. 기차를 멈추려 해도 브레이크가 고장이다. 그런데 오른쪽 비상철로에는 인부가 1명뿐이다. 전차를 비상철로로 돌리면 1명이 죽는 대신 5명을 살릴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찰 임무 수행 중 맞닥뜨린 상대방 민간인이 아군의 소재를 적군에게 알려줄 위험이 있는데도 그대로 보내줘야 할까. 샌델 교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보다 정의에 가까운지 생각하게 한다.

장하준 교수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당연시해온 자유시장주의에 대해 근본적이고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자유시장이란 없다,기업은 소유주의 이익을 위해 경영하면 안 된다,잘 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 임금을 많이 받는다,자유시장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저자의 주장에 논리의 비약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다 나은 자본주의를 위한 그의 제안과 경제전문 용어를 거의 쓰지 않고도 자본주의와 세계경제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노력은 평가해줄 만하다. 장 교수는 자유시장주의 대신 더 잘 규제된 자본주의와 인간의 합리성에 한계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경제시스템,인간의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을 발휘하게 하는 경제시스템,금융과 실물 부문의 균형,더 크고 적극적인 정부,개발도상국에 대한 우대 등을 제안하고 있다.

《공감의 시대》는 3만3000원이라는 적잖은 책값에도 출간 두 달 만에 2만부 이상 팔렸다. 이 책 역시 남성 독자가 70%를 차지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유러피언 드림》 등으로 잘 알려진 저자는 이 책에서 오픈 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다윈의 적자생존이 아니라 '공감하는 인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경제사에 '공감'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다. 이미현 민음사 홍보부장은 "《공감의 시대》 외에도 《금융의 지배》 《조조평전》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룬 책들에 남성 독자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하반기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