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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 여행] 500년 다져진 모양城 한 바퀴 도니…어느새 발길은 복분자酒 향기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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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고창 (上)

    진서루 오르자 읍내가 옹기종기
    서정주 시비에는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이…
    [감성 여행] 500년 다져진 모양城 한 바퀴 도니…어느새 발길은 복분자酒 향기 따라…
    ◆백제의 모양부리현을 지키던 읍성

    전북의 남서 해안가에 있는 고창은 1914년 고창군 · 무장군 · 흥덕군이 통폐합돼 생긴 군이다. 고창의 백제시대 이름을 이어받은 모양성(사적 제145호)을 고창 여행의 시발지로 삼는다. 모양성은 모양부리는 물론 전북 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였다.

    옹성 뒤에 세운 성문 공북루를 지나 동벽에서부터 성밟기를 시작한다.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모양성의 둘레는 1684m.숱한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져서인지 축성한 지 500여년이 흘렀지만 성벽은 거의 완전하다. 성벽을 따라가듯 우거진 솔숲은 그윽한 풍취를 지녔다.

    사방을 전망하면서 걷고 싶으면 성벽을 타고,자신 속으로 깊이 침잠하면서 걷고 싶으면 내려와 솔숲을 걷는다. 어느덧 남치(南雉) 부근의 울창한 맹종 숲에 이른다. 이 대나무 숲은 영화 '왕의 남자'에서 모의 사냥놀이 때 화살을 가진 신하들이 공길 일행을 진짜로 사냥하던 곳이다. 그 긴박한 장면을 상상하자 대나무의 청명한 기운이 쓰나미로 몰려오는 듯하다.

    진서루에 이르자 고창읍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담하고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소읍이 정겹다. 역사 속을 거니는 행복한 산책을 1871년에 세운 대원군 척화비 앞에서 끝내고 선운사로 향한다. 가는 길목에는 복분자밭이 즐비하다. 복분자가 남자의 어디에 좋은지 말할 수 없다는 광고가 떠올라 잠시 실소를 머금는다. 모호성과 함축성을 동시에 지닌 '거시기'라는 전라도 말을 썼더라도 좋았을 것을….

    ◆처음 피어날 때처럼 잊음도 순간이었으면

    '호남의 내금강'이라 부르는 선운산(336m)은 본래 이름이 도솔산이었다. 선운사 들머리 도솔천 건너 등반가처럼 암벽에 바싹 달라붙어 사는 늘 푸른 덩굴식물인 송악은 해가 갈수록 더욱 푸르다. 저 절벽은 송악의 정신적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시켜 주는 한 자루의 죽비인지 모른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 /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

    부친상 직후에 들렀던 주막집 아낙과의 사연을 옮겼다는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 시비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생의 깊은 골짜기를 헤쳐온 듯한 사람이 불러야만 제맛이 나는 육자배기야말로 서러운 동백꽃이다. 아 '막걸릿집 여자'가 부르는 육자배기 가락에 가슴을 적시던 날이 언제이던가.

    비자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부도전에 들었다. 그러나 추사 김정희가 글과 글씨를 쓴 백파율사비는 복제품만 서 있을 뿐이다. 해서체의 힘찬 필치로 내려쓴 '화엄종주백파대대기대용지비'는 금동지장보살좌상과 산내암자인 참당암의 동종과 더불어 성보박물관 안에서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사는 비문에 '지금 백파의 비에 새길 글자를 지음에 만약 대기대용(大機大用)이라는 한 구절을 큰 글씨로 특별히 쓰지 않는다면 백파의 비(碑)로서 부족할 것이다(今作白坡碑面字若不大書特書於大機大用一句不足)'라고 적었다. 대기대용이란 원숙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자유자재한 경지를 말한다. 둘이 첨예한 논쟁을 벌일 때와는 달리 극진한 예우를 갖춘 문장이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577년(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는 선운사가 모습을 나투신다. 산신당 뒤쪽에 자리잡은 넓고 푸른 동백나무 숲에 먼저 마음이 가 닿는다. 동백은 오래전부터 시인묵객들로부터 사랑받아온 꽃이다. 고려사람 이규보는 '동백화(冬柏花)'라는 시에서 '동백이란 이름은 옳지 않도다(冬柏名非是)'라고 지적한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장한 동백꽃이 잣나무와 똑같이 백(柏)자를 쓰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그의 지극한 동백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애불은 여전히 용화세상 꿈꾸건만

    얼마 가지 않아 높이 28m나 되는 거대한 장사송(천연기념물 제354호)과 왕위에서 물러난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전설을 지닌 진흥굴이 나타난다. 혹 진흥굴은 진흙굴의 와전이 아닐지.도솔암찻집을 지나자 금세 미륵불이 계신다는 도솔암이다.

    나한전 옆 칠송대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을 올려다본다. 각진 얼굴에 가는 눈을 뜨고 있는 마애불은 전형적인 이 땅의 민초의 모습이다. 머리 위에 있는 사각형의 구멍들이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의 흔적을 말해준다. 오지영(1868~1950)은 《동학사》에서 마애불 비결 탈취의 전말을 소상하게 적고 있다. 1820년 전라감사 이서구가 열었다가 다시 봉해둔 마애불의 배꼽을 다시 연 것은 1892년 8월 동학접주 손화중 무리였다. 그들은 도끼로 복장을 부수고 비결을 손에 넣었지만,주모자 3명은 바로 체포돼 처형을 당하고 손화중은 1895년에 체포돼 세상에 대한 변혁의 꿈을 펼치지도 못한 채 처형당하고 말았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철계단을 숨가쁘게 올라 도솔암 내원궁에 이른다. 미륵불이 오기 전까지의 무불시대(無佛時代)를 지키면서 중생을 교화 ·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이 지그시 눈을 감고 계신다. 미륵불과 임무교대할 날을 고대하며 세월을 낚으시나보다.

    ◆고인돌은 '마고 선녀의 집'

    인간의 원시적 추억이 서린 고인돌유적지로 향한다. 고인돌유적지(사적 제391호)는 고인돌박물관 건너편 야산 기슭에 있다. 북방식 · 남방식 · 천장돌만 있는 개석식 등 500여 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는 이곳이야말로 가히 고대 무덤의 야외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아마도 농수산물을 생산하기 좋은 들과 바다,땔감을 조달할 수 있는 산 등 생존에 필요한 요소를 두루 갖춘 입지조건이 선사시대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았을 것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진마마을에서 태어난 서정주는 '고인돌 무덤'이란 시에서 고인돌을 가리켜 착한 조선의 사람들이 저승에서 긴 영원살이를 하다가 심심할 때면 불러서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고 부탁하던 '마고 선녀의 집'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마고는 새 발톱같이 긴 손톱을 가진 선녀다. 태고의 산기슭,수백 명의 선사시대인이 거대한 바위에 달라붙어서 낑낑대며 돌을 옮기는 장면을 상상한다.

    죽음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고대인들에게 죽음은 하나의 축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세를 의심하는 현대인은 죽음을 모든 것의 끝이라 생각하고 무겁고 비통하게 받아들인다. 한 사람의 죽음을 위해 수백 명이 울력해야 했던 이 불합리한 풍경 앞에서 오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만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빌어먹을,합리성으로 무장한 나는 행복한 호모사피엔스인가.

    안병기 여행작가 smreoquf@hanmail.net


    < 바람·물 몰고온다는 풍천장어 한 점에 다시 기운을 얻고… >

    ◆ 맛집

    애당초 '식사(食事)'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먹는 즐거움을 지겨운 일로 바꿔버린 사디스트다. 그러나 작고한 김현승 시인처럼 아침 식사를 신앙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사람도 있다. '내 아침상 위에/ 빵이 한 덩이,/ 물 한 잔.// 가난으로도/ 나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신 주여.'(김현승 시 '아침식사' 부분)

    고창은 풍천장어로 유명하다. '풍천(風川)'이라는 말은 지명이 아니다. 고창의 장어가 바람과 물을 몰고 온다는 속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선운사 앞에 모여 있는데 풍천장어집 가운데 선운사입구 삼거리의 신덕식당(063-562-1533)을 추천할 만하다. 장어구이 1인분(375♥)에 1만8000원.공기밥 1000원.

    ◆ 여행 팁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아름다운 단풍나무의 자생군락으로 유명한 고수면 은사리 문수사는 한적한 절집이다. 행여 눈 쌓인 겨울에 찾으면 서늘한 산기운에 정신이 맑아져 사르락거리는 산죽 소리 하나에 깨침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풍경의 가피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창IC 좌회전→고창입구 사거리 우회전→국도 22→군도 21(고수삼거리 좌회전)

    공음면 선동리에 있는 학원농장은 30여만 평이나 되는 광활한 밭이 봄에는 청보리밭,가을엔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하얀 메밀꽃밭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청보리가 가장 푸르고 보기 좋은 때는 입하 무렵이다. 서해안고속도로→고창IC→15번 국도,무장읍성방면→무장면→공음방면→학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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