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은 숲속을 질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울창하고 아무런 질서 없이 서 있는 나무들과 같은 투자 안건들을 짧은 시간에 판단하며 질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놓치기 쉬운 것이 있다. 숲 전체를 조망하고 앞으로 가야 할 큰 방향을 읽는 일이다.

《대마불사》는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를 다룬 책이지만 금융업의 미래조건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참고가 되는 책이다. 바둑에서 비롯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미국 투자업계의 격변을 그리는 데 쓰였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은 늘 쓰는 말이 됐지만 1970년대 초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갈파한 말이 기억에 새롭다. 그는 국제정치에 '상호의존'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한 나라의 변화에 다른 나라가 민감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취약할 수 있다고 꿰뚫어 보았다. 이 책에는 리먼브러더스,AIG,메릴린치 등 금융의 '대마'들이 쓰러질 경우 그 파장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위기감을 가지고 워싱턴과 월스트리트의 리더들이 벌인 사투가 박진감 있게 그려져 있다.

사실 대마불사라는 말은 한국에서 이미 크게 부각됐다. IMF 구제금융 후에 구조조정이 한국을 휩쓸 때 대기업의 도산을 과연 공적자금으로 막아야 하는 것인가가 커다란 사회적 논쟁거리였다. 그런 논쟁이 미국에서 벌어지더니 지금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기술에 그치지 않고 금융자본주의 본연의 문제를 성찰하게 한다.

이 책은 또한 금융인들에게 소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 금융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금융당국자들,월스트리트의 리더들,금융언론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의 개인적 배경,성향,인적관계 등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이 책에 자세히 제시된 바와 같이 미국 금융계는 심한 홍역을 앓았다. 이는 미국의 전반적인 지위 하락,중국의 대두,유럽과 일본의 상대적 퇴조 등과 맞물려 세계 금융시장의 구조와 행동원리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오해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책의 번역자도 지적했듯이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으로의 패러다임 변화이다. 이는 금융의 시발점이자 소비자인 개인과 가계가 '저축에서 투자로' 전환하는 거대한 조류를 가리킨다.

개인과 가계의 잉여 금융자산이 저축에만 머무를 수 없고 투자로 전환되는 것은 시대의 조류이자 요청이다. 따라서 이 투자의 활용이 개인의 재산권뿐 아니라 국민경제에 커다란 과제로 등장했다. 이와 함께 금융계에도 구조개편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 칸막이로 단절되었던 은행,증권,자산운용,대체투자,대금업 등 다양한 분야의 경계가 없어지고 동등하게 경쟁하게 된 것이다. 이는 금융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융합화 · 대형화로 이어져 새로운 '대마'들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한다.

과거 세계 금융의 변방에 있던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권에 진입하면서 중요한 금융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책은 위상과 함께 책임이 커지고 있는 한국 금융계에 미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종과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하기에 손색이 없다.

손복조 < 토러스투자증권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