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좋은 부자, 나쁜 부자, 이상한 부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옛날 충남 공주에 큰 부자가 있었다. 노비출신으로 인생 역전 과정을 겪고 군수까지 지낸 그는, 사전정보를 이용하여 대전 땅을 대량 매입하고 충남 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는 로비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공주와 대전을 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도 재운이 다하여 해방 후 그 많던 토지도 유상 몰수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그가 조상의 묘 관리를 잘했다고는 알려져 있지만, 친일행위로 인한 부의 축적으로 조상의 운을 받지 못하고 졸부의 말로를 보냈다. 개천에서 용 나듯이 졸부도 어느 정도 재물을 모을 수는 있지만 그 부가 대를 잇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국가보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재물을 모은 나쁜 부자이기 때문이다.
공주 부자가 나쁜 부자라면 좋은 부자는 어떤 사람인가. 좋은 부자는 일신을 위해 재물을 모으지 않고 자기 그릇이 늘 넘치지 않게 남에게 베풀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좋은 부자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은 아마 경주 최 부자가 대표적일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부자인 최 부자 집안에는 대대로 전하는 가훈이 있는데 그 중에는‘마을 10 리 안에 배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이 있다. 이 가훈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보살피라는 유훈인 것이다. 최 부자집은 더불어 사는 것을 부자의 도리로 여기고 대를 이어 그 유훈을 이어 가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후손들이 잘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는 영원한 부를 가지고자 하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영원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대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실제로 대를 이어 부자 소리를 듣는 좋은 부자들은 모두 그 방법을 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눔으로, 부자가 드는 일종의 보험이다. 나눔은 쉬워보여도 부자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부자 철학이 있는 자만이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부자가 되기 위한 나눔과 베풂에도 어려움은 있다. 아무한테나 함부로 베풀면 처음부터 베풀지 아니함만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회사를 운영하는 어떤 부자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매년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그러다 어느 해 회사 자금사정이 어려워 생활비를 지급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회사로 찾아와 왜 생활비를 안주냐고 따졌다. 그 부자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 생활비를 운영자금을 썼다고 하자, 그 사람은 더 큰 소리로 “왜 내 돈을 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합니까?”라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고마움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이 되고, 도움도 늘 받게 되면 당연히 받을 걸 받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중간에 도움이 끊기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베풀어 준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화가 더 크게 작용한다. 받지 못하면 빼앗긴 것처럼 느껴지고 결국 감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나눔도 하다 멈추거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푼다면, 베풀고도 욕을 먹는 이상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열흘 전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로 가옥이 파괴되고 인명이 살상당하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배 굶는 아이들과 주민을 위해 식량과 약품 등을 꾸준히 지원해 주었다. 경주 최 부자의 가훈처럼 10 리 안에 배 굶는 사람이 없도록 인도적인 차원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준 것이다. 제대로 고마움의 표시 없이 당연한 것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북한에게, 우리는 이번에 베풀고도 뒤통수를 맞는 이상한 부자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좋은 부자라도 상대방이 실속만 차리거나 역행하는 행동을 한다면 결국 이상한 부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도적인 부분까지 무시한다면 나쁜 부자소리 들을 수 있다. 이번 북한의 무력행위에 대해 이상한 부자소리를 듣더라도 계속 지원할 것인지는, 아니면 모든 지원을 중단할 것인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촛불을 자신만을 비추면 세상은 밝아지지 않는다.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재운은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한다. 조너스 솔크 박사는 미래의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고, 좋은 조상되는 것이라 했다. 세상을 향해 촛불을 들고, 있는 듯 없는 듯 원명적조(圓明寂照)한 부자가 좋은 부자, 좋은 조상이 아닐까 한다.
☞ 차길진 칼럼 더 보기
공주 부자가 나쁜 부자라면 좋은 부자는 어떤 사람인가. 좋은 부자는 일신을 위해 재물을 모으지 않고 자기 그릇이 늘 넘치지 않게 남에게 베풀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좋은 부자소리를 들을 만한 사람은 아마 경주 최 부자가 대표적일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부자인 최 부자 집안에는 대대로 전하는 가훈이 있는데 그 중에는‘마을 10 리 안에 배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말이 있다. 이 가훈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지 말고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보살피라는 유훈인 것이다. 최 부자집은 더불어 사는 것을 부자의 도리로 여기고 대를 이어 그 유훈을 이어 가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을 후손들이 잘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는 영원한 부를 가지고자 하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영원한 부자는 아니더라도 대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실제로 대를 이어 부자 소리를 듣는 좋은 부자들은 모두 그 방법을 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눔으로, 부자가 드는 일종의 보험이다. 나눔은 쉬워보여도 부자라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부자 철학이 있는 자만이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부자가 되기 위한 나눔과 베풂에도 어려움은 있다. 아무한테나 함부로 베풀면 처음부터 베풀지 아니함만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회사를 운영하는 어떤 부자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매년 생활비를 보내 주었다. 그러다 어느 해 회사 자금사정이 어려워 생활비를 지급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회사로 찾아와 왜 생활비를 안주냐고 따졌다. 그 부자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 생활비를 운영자금을 썼다고 하자, 그 사람은 더 큰 소리로 “왜 내 돈을 회사 운영자금으로 사용합니까?”라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고마움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이 되고, 도움도 늘 받게 되면 당연히 받을 걸 받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중간에 도움이 끊기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베풀어 준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화가 더 크게 작용한다. 받지 못하면 빼앗긴 것처럼 느껴지고 결국 감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나눔도 하다 멈추거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푼다면, 베풀고도 욕을 먹는 이상한 부자가 되는 것이다.
열흘 전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로 가옥이 파괴되고 인명이 살상당하는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배 굶는 아이들과 주민을 위해 식량과 약품 등을 꾸준히 지원해 주었다. 경주 최 부자의 가훈처럼 10 리 안에 배 굶는 사람이 없도록 인도적인 차원에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준 것이다. 제대로 고마움의 표시 없이 당연한 것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북한에게, 우리는 이번에 베풀고도 뒤통수를 맞는 이상한 부자가 되어 버렸다.
아무리 좋은 부자라도 상대방이 실속만 차리거나 역행하는 행동을 한다면 결국 이상한 부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도적인 부분까지 무시한다면 나쁜 부자소리 들을 수 있다. 이번 북한의 무력행위에 대해 이상한 부자소리를 듣더라도 계속 지원할 것인지는, 아니면 모든 지원을 중단할 것인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촛불을 자신만을 비추면 세상은 밝아지지 않는다.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재운은 더 이상 대를 잇지 못한다. 조너스 솔크 박사는 미래의 부자는 돈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고, 좋은 조상되는 것이라 했다. 세상을 향해 촛불을 들고, 있는 듯 없는 듯 원명적조(圓明寂照)한 부자가 좋은 부자, 좋은 조상이 아닐까 한다.
☞ 차길진 칼럼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