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누구나 공감하는 보통선거에 대해 18세기에는 진보적 비판자였던 입센조차 '무능한 다수의 지배'라고 비판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제한적인 보통선거권의 도입을 둘러싸고 귀족층인 휘그당이나 반대파 토리당이 한목소리를 냈던 것도 '무능한 다수의 지배가 불러올 위험' 때문이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은 이처럼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일조차 역사적인 데뷔 당시엔 다양한 의도를 지닌 정치적 공세에 직면해야 했으며 이런 공세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음을 주목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그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성공과 인권선언,19세기 보통 선거권의 도입,20세기 복지국가의 수립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유명한 논쟁들을 되짚으며 변화에 대해 '반동'하려는 보수의 수사학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개혁세력의 주장이 의도와 달리 정반대의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역효과론,변화를 위한 시도가 결국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무용론,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위험론이다. 가령 "산업재해보험제도를 도입하면 노동자들은 일부러 자신의 손발을 자를 것"이라는 주장은 역효과론,"프랑스혁명의 성과들은 이미 구체제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혁명으로 도대체 바뀐 것이 뭐냐"고 하는 것은 무용론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