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예산 40% 배터리에 투자..세계 최고 기술력 자신"

"연필은 안됩니다.볼펜을 써주세요."

취재진 중 한 명이 공장에 들어가기 전 수첩과 연필을 꺼내 들자 안내를 담당한 LG화학 직원이 급히 이를 제지했다.

연필로 적을 때 나오는 흑연가루가 공장 안에서 날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LG화학이 12일 언론에 처음 공개한 충북 청원군 오창 과학산업단지 내 중대형 2차 전지 공장은 반도체 회사만큼이나 청정을 최우선시했다.

2차 전지 생산 과정에서 '최대의 적'은 분진과 습도라고 했다.

공장에 들어간 지 10분도 되지 않아 사막보다 낮은 습도 때문에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했을 정도다.

사진촬영이나 녹음이 엄격히 금지돼 휴대전화를 꺼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LG화학은 지난해 7월 이곳에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중대형 2차 전지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공장을 착공, 올해 6월 완공해 양산에 들어갔다.

연면적 5만7천㎡(1만7천평)에 연간 생산능력이 850만셀(cell)로, 전력량으로 치면 아반떼 하이브리드 모델 40만대에 장착할 수 있는 규모다.

현재 이 공장에선 현대기아차의 아반떼, 포르테, 소나타의 하이브리드 모델과 GM의 세계 첫 양산형 전기차 '시보레 볼트'에 들어갈 중대형 2차 전지를 생산 중이다.

LG화학은 주문량이 급증할 것에 대비해 비슷한 규모의 생산라인을 증축 중인데 2013년까지 1조원을 투자, 오창 공장의 생산규모를 연간 6천만셀로 늘릴 계획이다.

중대형 2차 전지는 제조 공정은 전극, 조립, 활성화 등 3개 공정으로 크게 나뉜다.

전극공정은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을 만드는데 재료를 적당한 비율로 섞고 이를 코팅하고 일정한 두께로 눌러 평평하게 만든 뒤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크기로 자르는 공정이다.

조립공정은 이렇게 만든 양극재, 분리막, 음극재를 번갈아 켜켜이 쌓은 뒤 이를 수차례 접어(스택 앤드 폴딩. stack & folding) 알루미늄 봉지에 담아 전해질을 넣고 진공상태로 밀봉하는 과정이다.

그동안 2차 전지는 전극과 분리막을 겹치고 김밥처럼 둘둘 마는(winding) 방식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충·방전을 500회 정도 하면 전지가 변형돼 열이 나는 단점이 있었다.

마지막인 활성화 공정에선 수일간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면서 '숙성'을 시켜 배터리를 완성하는데 이런 세 공정은 모두 한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중대형전지 생산담당인 김현철 수석부장은 "전극 제조공정이 가장 중요한데 경쟁사보다 30% 이상 생산효율이 높다"고 말했다.

이렇게 대형 공장을 처음 짓는 데다 스택 앤드 폴딩 방식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도하다 보니 생산 라인의 장비도 LG화학이 처음부터 자체 설계했다.

핵심소재 4개 가운데 음극재를 제외한 양극재, 분리막, 전해질도 중소기업과 협력, 자체 기술력으로 해결하고 있다.

스택 앤드 폴딩 기술과 더불어 LG화학이 자랑하는 특허기술은 안전성강화분리막(SRS)이다.

SRS는 리튬이온 2차 전지의 핵심 소재인 분리막 표면에 얇게 세라믹 소재로 코팅하는 기술이다.

분리막은 양극재와 음극재를 나눠 합선을 방지하면서도 리튬이온이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폴리프로필렌 또는 폴리에틸렌으로 만드는 얇은 막이다.

분리막에 외부의 미세한 불순물이 섞이면 분리막이 찢어지면서 합선 현상이 생겨 2차 전지에 불이 나거나 성능이 떨어질 수 있는데 LG화학은 외부 불순물이 침입할 수 없도록 분리막 표면에 나노단위 두께의 세라믹 코팅을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LG화학 기술연구원 김명환 배터리연구소장은 "스택 앤드 폴딩과 SRS 덕분에 2차 전지의 내구성과 안전성이 크게 높아졌다"며 "전기차용 2차 전지에 열이 나면 성능 저하뿐 아니라 자동차에 불이 날 수 있어 운전자의 안전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양극재는 코발트 계열도 쓰는데 우리는 열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망간계열을 쓰는 연구에 성공했다"며 "업계와 학계에선 부정적이었지만 망간계열로 해서 안되면 화재 위험 때문에 2차 전지를 안 만드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른 2차 전지가 금속 깡통에 담는 '캔'(can) 방식인데 비해 LG화학은 알루미늄 봉지에 담는 '파우치'(pouch) 방식인 것도 안전성 때문이라고 했다.

LG화학은 2차 전지에 회사의 미래를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진녕 기술연구원장은 "현재 회사의 매출의 70%가 석유화학 분야에서 나오지만 연구개발(R&D) 예산의 40%를 2차 전지에 쓰고 있다"며 "현재 세계 어느 연구집단과 겨뤄도 맞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기술연구원의 배터리 연구 인력 중 80% 이상이 국내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김 소장은 "2차 전지 개발 초기엔 일본을 따라갔지만 현재는 기술면에서 그들을 앞선다"며 "일본이 앞선 소형 2차 전지는 저전류인데 중대형은 고전류인 탓에 그들이 우리와 같은 기술을 실험실에선 성공할 수 있어도 대규모 양산하려면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청원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