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협상의 최대 쟁점이 자동차 분야로 압축된 가운데 미국이 "한 · 유럽연합(EU) FTA와 균형을 맞춰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예컨대 한국 자동차 업체가 미국에 완성차를 수출할 때 수입 부품에 대해 낸 관세를 우리 정부로부터 돌려받는 관세환급을 제한해 달라는 것으로,한국이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하려면 기존 FTA 협정문을 수정해야 한다.

최석영 통상교섭본부 FTA 교섭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이 같은 협상 쟁점을 놓고 당초 일정인 4,5일을 넘겨 주말인 6,7일에도 실무협의를 계속했다. 양측은 최대한 이견을 좁혀 합의문 초안을 만든 뒤 8,9일 서울에서 열리는 양국 통상장관회담과 11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한 · 미 정상회담 때 보고할 예정이다.

◆한 · EU FTA와 균형 맞추기

정부는 7일 오전 청와대에서 한 · 미 FTA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협상 전략 등을 조율했다.

회의에는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비롯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임태희 대통령실장,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의가 끝난 뒤 "미국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얘기했다"며 "한 · 미 FTA 협정을 마무리지은 뒤 3년이 지나 그동안 제도가 바뀐 측면도 있고 우리가 유럽과 FTA를 했는데 그쪽과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들도 있다"고 말했다. 한 · 미 FTA 추가 협상에서 한 · EU FTA와 균형 맞추기가 본격적인 의제로 올랐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핵심 쟁점은 자동차 부품에 대한 우리 정부의 관세 환급을 제한하는 것이다. 한 · EU FTA에선 현행 8%인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환급액을 협정 발효 5년 뒤부터 5%로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 마련됐다. 하지만 한 · 미 FTA에는 이 같은 규정이 없어 미국은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협정문 수정하나

문제는 '한 · EU FTA와 균형 맞추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를 제한하는 것은 한 · 미 FTA 협정문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한 · 미 FTA 협정문과 부속서가 비준을 위해 계류돼 있다. 부속서는 관세 철폐 등에 대한 세부 일정이 담긴 서한으로 협정문과 마찬가지의 법적 효력을 갖는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미국의 요구가 한 · EU FTA 수준 정도라면 수용 가능성이 열려 있다"면서도 "관세 문제를 손대면 부속서를 고쳐야 하는데 결국 협정의 근간을 바꾸게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또 다른 요구사항인 픽업트럭 시장 추가 보호 조치도 마찬가지다. 현재 25%인 픽업트럭 관세를 FTA 협정 발효 10년 내에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조항을 완화하는 것 역시 기존 협정문의 기본 틀을 고치는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가 그동안 "협정문에서 점 하나 고칠 수 없다"고 밝혀온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양국 통상장관이 별도의 양해각서를 통해 '무역 불균형 해소에 노력한다'는 식의 합의를 담아낼 수는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떨어져 미국이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한국만 양보냐,주고받기냐

한국은 당초 별도의 요구 사항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국의 요구 사항 중 최소한만 수용해 협상을 조기 타결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한 · 미 FTA 관계장관회의 뒤 "FTA 실무협의의 성격이 우리가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딱히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협상 전략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관세 쪽에 손을 대면 '우리만 양보했다'는 비판에 시달리게 된다"며 "우리도 뭔가 대가를 요구하는 게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주용석/홍영식/서기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