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동 동부하이텍 상무(48 · 아날로그 파운드리 공정개발팀)가 '차세대 시스템온칩(SoC)생산 공정'개발에 뛰어든 2005년 7월만 해도 동부하이텍은 이 분야 후발주자였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인 대만 TSMC를 비롯해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이 이미 관련 기술을 개발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국내 팹리스(설계 전문회사)들도 해외 기술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유 상무는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국내 업체가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시스템온칩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국내 업체의 위상이 떨어진다"며 "국산 기술을 개발할 필요성이 컸다"고 말했다. 정보를 저장하는 데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는 연산이나 논리 작업 등과 같은 정보 처리 목적으로 쓰인다. 특히 시스템온칩은 2개 이상의 반도체 칩을 하나로 묶은 칩으로 전자제품이 첨단화 · 지능화되면서 수요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유 상무는 "가령 TV 화면이 커지면 부품 수가 많아지고 TV 생산업체는 비용 절감을 위해 2~3개 부품을 하나로 줄이고 싶어한다"며 "이런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이 시스템온칩"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은 두 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는 선발업체를 추격하는 일이었다. 기술 개발을 시작한 지 2년여 만인 2007년 하반기 TSMC 등이 개발한 '0.35마이크로미터(㎛)급 생산 공정'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국내 업체로선 처음이었다. 유 상무는 곧바로 당시 세계 시장에 선보이지 않은 '0.18㎛급 생산 공정'개발에 착수했다. 1㎛은 100만분의 1m 굵기로 반도체 회로 폭을 측정하는 단위로 쓰인다. 회로폭이 작을수록 그만큼 부피가 작고 정교한 제품을 뜻한다. 유 상무는 "0.35㎛급 생산 공정이 2개의 칩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 정도의 기술 수준인 반면 0.18㎛급은 3~4개의 칩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선발주자가 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0.35㎛급 공정 개발 때와 달리 벤치마킹 대상이 없었다. 게다가 동부하이텍은 내부 설계 인력 없이 외부 설계 업체의 주문을 받아 생산을 대신해주는 파운드리 업체다. 그렇다보니 설계 업체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세계 시장의 트렌드가 어떤지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유 상무는 새로운 공정 기술에 대한 수요 조사를 위해 0.18㎛급 공정 개발 계획서를 들고 반도체 설계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아날로그디바이스(ADI)와 마이크렐 등을 찾아갔다. 당시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동부하이텍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많았다.

어렵게 세계적 설계 업체들을 만나 수십 차례 회의를 갖고 국내외 반도체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하면서 조금씩 돌파구가 열렸다. 유 상무는 "고객(설계업체)의 요구를 정확히 알아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유 상무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0.18㎛급 생산 공정 개발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 특허청에 125건의 특허출원을 했고 이 중 36건이 특허로 인정됐다. 그가 개발한 공정은 현재 발광다이오드(LED) 구동회로칩과 전력관리 칩,오디오 칩 등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동부하이텍의 관련 제품 매출은 2008년 31억원에서 지난해 205억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466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기술 개발 당시 만나기도 쉽지 않았던 ADI 등 세계적 설계업체들이 지금은 최대 고객 중 하나가 됐다.

으뜸기술상 심사위원들은 이에 대해 "국내 반도체 산업은 D램 등 메모리 사업에 편중됐으나 이 기술을 통해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며 유 상무를 제4회 으뜸기술상 최우수상(지식경제부 장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유 상무는 대학에서 물리학,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26년간 반도체를 연구한 그는 "우리가 0.18㎛급 공정을 개발한 뒤 6개월 만에 TSMC가 곧바로 같은 기술로 따라붙었다"며 "내년에는 더 정교한 생산 공정 개발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 으뜸기술상

한 해 4조4000억원의 연구 · 개발(R&D) 예산을 투입하는 지식경제부가 주최하고 국내 최고 권위의 공학자 모임인 한국공학한림원이 수상자를 선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명품 기술상'이다. 국내 최정상 경제신문인 한국경제신문과 지경부 산하 최대 R&D 평가관리 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한림공학원과 함께 으뜸기술상을 공동 주관하고 있다. R&D 과제 3000여개 중 공학한림원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2개월마다 수상자를 선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