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개신교 목사와 신자 등 10명이 서울 삼성동 봉은사를 방문했다. 사흘 전 공개된 '봉은사 땅밟기'라는 동영상을 만든 단체 사람들로,자신들의 무례와 무지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이른바 '땅밟기'란 우상의 땅이 하나님의 땅이 되기를 기원하는 신종 의례다. 어떤 연유로 이런 것이 만들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보수 기독교계를 대변해온 한국교회언론회는 "이런 해프닝은 국민을 불편하게 하고 기독교 전체를 욕되게 하는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다.

생각보다 신속히 갈등이 해결돼 다행이지만 종교로 인한 갈등은 끝을 모른다. 종교 간의 갈등에다 종교와 과학의 갈등까지 문제는 복잡하고도 심각하다. 특히 《만들어진 신》을 쓴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호킹 등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무신론은 기성 종교의 권위를 부정하며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이 같은 논의에 대해 영국의 세계적 종교학자이자 종교비평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신작 《신을 위한 변론》에서 "신이 우주를 디자인했다는 지적설계론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통해 그것들을 논박하려는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과학주의자들 역시 신과 종교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종교의 편에 서든 과학의 편에 서든 이들 '근본주의자'가 생각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는 "종교 근본주의의 수많은 폐단들 속에서 도킨스와 같은 '신(新)무신론자'들의 목소리가 새로운 복음이 된 작금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토로한다. 도킨스나 히친스,샘 해리스 같은 최근의 무신론자들의 비판에 타당한 부분도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그토록 과격하게 표현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것.한때 가톨릭 수녀원에서 7년 동안 생활했던 저자는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종교에 관한 말다툼이 역효과를 낳을 뿐 사람들의 깨우침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진정한 종교와 신의 의미를 짚어나간다.

그에 따르면 지난 수천년간 인류는 신,브라흐만,열반,도(道)라는 이름으로 신성한 어떤 것을 만나왔다. 인류는 지적인 존재이기에 앞서 '종교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말씀''믿음''교리' 등이 종교생활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자신의 언어와 한계를 넘어 초월적인 영성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법을,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법을 잊어버리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 경험의 절반을 차지하던 뮈토스(신비)의 영역이 근대 이후 어떻게 로고스(이성)에 의해 파괴되는지를 시대별 종교사를 짚어가면서 꼼꼼히 분석한다. 근대 이후 종교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왜곡된 근본주의자와 그 쌍생아인 무신론자들이 등장해 세계를 영적 불모지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종교의 미래를 조심스럽게,그러나 단호하게 전망한다.

"20세기 중반 세속주의자들의 확신에 찬 예언들과 달리 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종교가 유일신 신앙과 근대의 과학적 풍토에 늘 내재해온 난폭하고 편협한 압력에 굴복한다면 새로운 종교성은 '서투른' 수준에 그치고 말 것이다. "

그는 아울러 "오늘날 종교적 · 세속적 교조주의가 넘쳐나고 있기는 하지만 모름(unknowing)의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면서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침묵하고 말을 아끼고 외경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오랜 종교적 전통의 복원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종교와 신의 본질은 무엇일까. "자기 존재의 가장 심오한 차원과 일치하는 삶의 초월적 측면을 발견하는 것이 종교와 신의 본질"이라며 "종교는 우리 마음의 새로운 능력을 발견하도록 가르치는 실천적 수련"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것을 안다면 굳이 신이 있느니 없느니,내 종교가 옳으니 네 종교가 그러니 싸울 이유도 없지 않을까.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