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정미경씨(48)는 최근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해서 쏠쏠하게 재미를 봤다. 올 3월 코스피지수와 홍콩항셍지수를 기초로 하는 ELS에 1억원을 투자했는데 6개월 만에 9%의 수익률로 조기 상환받은 것이다. 정씨는 "사실 ELS 상품구조는 잘 모르지만 담당 프라이빗뱅커(PB)의 권유로 자산의 일부를 투자해봤다"며 "예상보다 빨리 만족할 만한 수익률로 상환돼 돈을 ELS에 재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요즘 강남권 부자들에게 ELS가 각광받고 있다. ELS는 상이한 두 개의 상품을 조합해 만드는 구조화증권의 일종이다. 대부분 금액을 채권 등 안전자산에 투자하고 일부는 주가지수 옵션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초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수익이 보장되는 데다 공격적인 투자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안전자산을 통해 최소한의 수익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기예금 빼서 ELS로 굴리기도

강남 부자들이 ELS에 주목하는 것은 최근의 시장 상황 때문이다. 코스피지수가 단기간에 급등한 상황이어서 주식이나 자문형 랩어카운트에 투자하기 부담스러워서다. 시중금리 역시 낮아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다. 정환철씨(58 · 송파구 잠실동)는 "시중에 나와 있는 금융상품을 늘어놓고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더라"며 "그나마 ELS가 조정장에서 유리한 상품인 듯해 주식투자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ELS로 옮겼다"고 소개했다.

송재원 신한은행 방배PB센터 PB는 "정기예금 수익률이 연 3.7% 수준으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이다 보니 갖고 있던 예금을 해약해 ELS로 갈아타는 고객들도 있다"며 "연초에 인기를 끌었던 랩어카운트는 코스피지수가 1800선을 넘은 이후 자금 유입이 뜸해졌다"고 전했다.

김진영 동양종금증권 골드센터강남점 대리도 "최근 급등한 증시에 부담을 느끼는 고액 자산가들이 ELS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가지수 연계한 ELS가 인기

강남 부자들의 ELS 투자 패턴은 발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거치며 ELS의 위험성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ELS는 기초자산의 지수나 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갈 경우 원금의 상당액을 날릴 위험이 있다. 개별 종목을 기준으로 설정한 ELS는 일부 증권사들이 만기일이나 종목의 종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투자자에게 돌아갈 이익을 가로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강남 부자들은 종목이 아닌 코스피200 등 지수를 추종하는 ELS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제환 하나은행 방배PB센터장은 "고액 투자자들은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증권사와의 분쟁 가능성까지 가능한 차단하려 한다"며 "개별 종목의 종가는 조정할 수 있어도 전체 시장 지수를 증권사 뜻대로 할 수 없는 만큼 종목보다는 지수를 기초로 한 ELS가 많이 팔린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미국 S&P5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를 찾는 고객이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이정환 대우증권 파생상품영업부 차장은 "미국 정부가 추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뉴욕 증시 상승세를 염두에 둔 상품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

기초자산이 개별 종목인 경우에는 구성 종목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핀다. 최근 주가 조정을 받은 삼성전자 등 정보기술(IT) 관련 종목을 기초로 하는 ELS가 인기다. 증시가 상승할 경우 추가 상승 여지가 큰 데다 낙폭은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동양종금증권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포스코,한전 등 상대적으로 덜 오른 대형주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대형주일수록 주가가 안정적인 만큼 혹시 증시가 조정을 받더라도 원금은 지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남권 고객들로부터 이 같은 종목을 중심으로 ELS를 설계해 달라는 제안을 몇 차례 받았다"고 덧붙였다.

◆양방향 ELS 등 상품도 다양화

ELS에 관심을 보이는 자산가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증권사들은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최근 한 증권사는 코스피200이 전일 대비 12% 이상 급락하지 않으면 연 5% 중반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ELS를 사모 형태로 내놔 강남권에서 인기를 끌었다. 역대 코스피지수의 하루 최대 낙폭이 11.8%였던 것을 감안해 해당 수익률을 보장받을 확률이 높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른 증권사 ELS 담당자는 "만일 하루 낙폭이 12%를 넘어가면 원금의 90%를 잃는 구조여서 리스크가 큰 상품"이라며 "참신성도 중요하지만 상품의 위험도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초자산의 가격이 상승하든 하락하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양방향 ELS도 인기다. 주가가 계속 상승할 경우의 수익률은 제한되지만 조정을 받더라도 일정 부분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