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하루 24시간 공장을 풀 가동하고 있습니다. "

지난 14일 인천시 부평구 창천동에 위치한 YG-1 공장.금속 가공에 쓰이는 엔드밀(절삭공구의 일종)분야 세계 챔피언인 이 회사의 송호근 사장은 공장을 찾은 기자에게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주문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에는 1981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내며 '쓴 맛'을 보기도 했다. 2008년 1782억원에 달하던 매출이 지난해에는 1155억원으로 35% 떨어졌다. 하지만 송 사장은 단 한 명의 직원도 내보내지 않았다. 일시적인 위기는 얼마든지 넘길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들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는 오히려 '공격 경영'에 나서고 있다. 송 사장은 "앞으로 1년간 300억원 가량을 신규 투자하고 매년 30명 이상의 신입사원을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 사장은 "불황으로 상당수 경쟁 업체가 문을 닫고 살아남은 업체들도 투자에 소극적"이라며 "1등 업체가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허약한 '산업 미드필더'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이다. 한편에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한 삼성 현대 LG 등이 버티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숫적으로는 99.8%로 절대 다수지만 영세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이 몰려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중간쯤에 놓인,축구로 치면 미드필더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 제조업체 중 중견기업(매출 1조원 미만 또는 종업원 1000명 미만)은 2007년 기준으로 0.2%에 불과하다. 독일(8.2%)의 40분의 1에도 못미치고 미국(2.4%)의 12분의 1,일본(1.0%)의 5분의 1 수준이다. 중견기업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한국은 8.1%로 독일(28.7%),미국(14.4%),일본(15.3%)보다 낮다.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의 성장 경로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대기업 집단 출현이 이뤄지지 못하는 점은 큰 문제다. 1997년의 중소 · 중견기업들 가운데 2009년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28곳 뿐이다.

◆흔들리는 성장 패러다임

이런 상황에서 국내 주력산업은 중국의 추격에 시달리고 있다. 정동희 지경부 산업기술개발 과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조립 · 장치 산업을 중심으로 일본은 약화되고 중국은 급부상한 반면 한국은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무역적자도 고질적인 문제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원천기술이 필요한 핵심 부품 · 소재는 대일 의존도가 여전히 크다"며 "핵심 부품 · 소재를 일본에서 조달하는 것이 과거 고도 성장기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기업 일자리는 1995년 251만1000개에서 2008년 208만9000개로 42만2000개나 감소했다.

◆히든 챔피언 300개 만들면

독일 출신의 세계적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지몬-쿠허 앤드 파트너스'회장은 지난 4월 한국 방문 강연에서 "대기업에 편중된 글로벌 전략은 한계가 있다"며 "히든 챔피언을 살찌워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히든 챔피언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수출입은행과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AT커니는 한국이 히든 챔피언 300개를 육성하면 연간 48억달러(5조3320억원)의 수출 증대와 25억6000만달러(2조8440억원)의 국내총생산(GDP)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전체 수출(3637억7000만달러)의 1.3%, GDP(8319억달러)의 0.3%와 맞먹는 효과다.

고용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크다. 연간 기대되는 신규 일자리 창출 효과는 4만9000명으로 정부가 최근 '국가 고용 전략'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목표치로 제시한 신규 일자리(연간 24만개)의 20%에 달한다.

무형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대기업 이외의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지면 젊은층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 완화될 수 있다. 수출 증대에 따른 한국의 브랜드 가치 상승도 상당할 전망이다. 정성수 수출입은행 히든챔피언 육성팀 부부장은 "한국형 히든 기업은 대부분 수출 잠재력이 큰 중견기업"이라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