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하루 뒤면 최종 결과가 나오는데 굳이 첫날 경쟁률까지 알려드려야 하나요?"

스마트카드 제조업체 아이씨코리아의 공모주 청약 첫날인 지난 7일,경쟁률을 확인하기 위해 주관사인 H증권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담당자는 "첫날 경쟁률은 최종 경쟁률과 편차가 심해 의미가 없다"며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기자가 따져묻자 돌아온 답은 더 황당했다.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들이 첫날 결과는 알려주지 않기로 했으니 다른 곳에도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첫날 경쟁률은 공개하지 않기로 '담합'했다는 얘기다.

이틀간 진행되는 공모주 청약 일정 중 첫날 경쟁률을 밝히지 않은 증권사는 이곳만이 아니다. 몇 달 전부터 증권사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둘째날 최종 경쟁률만 공개하더니 지금은 아예 관행처럼 돼 버렸다. 심지어 "각 영업점에서 올라온 청약 결과를 집계하기 바빠 기자들 요구를 일일이 들어주기 힘들다"며 거절한 증권사도 있다.

하지만 경쟁률 집계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투자자들이 각 영업점에서 공모주에 청약하면 경쟁률이 자동 집계돼 주관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증권사들이 청약 첫날 경쟁률을 감추는 속사정은 뭘까. 첫날 경쟁률이 너무 낮으면 둘째날 청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IPO를 주관한 증권사의 이미지가 구겨진다는 게 진짜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첫날 경쟁률이 낮으면 투자자들이 공모회사나 공모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청약을 포기할 수 있어 가급적 경쟁률이 노출되기를 원치 않는다"며 "자사 고객이야 HTS를 보면 되니 증권사로선 첫날 경쟁률까지 공개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털어놨다.

청약 경쟁률 공개 여부는 증권사들이 선택할 사항이 아니다. 공모주 투자자들에 대한 기본 서비스다. 경쟁률에 따라 배정받는 물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관 증권사가 여러 곳이면 투자자들은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공모주 투자가 대안투자로 자리잡아가는 시대에 증권사들이 필수적인 투자정보를 구차한 핑계를 대가며 감추는 것은,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공정하지 않아 보인다.

서보미 증권부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