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이머징마켓) 증시에서 지난 3분기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등을 통해 조달한 자금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선진시장을 추월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선진국 경제가 재정불안,경기회복 지연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글로벌 자금들이 신흥시장 증시로 빠르게 유입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1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시장지수에 편입된 21개국 증시에서 기업들이 3분기(7~9월) 중 조달한 자금은 1380억달러(약 156조원)로 집계됐다. 이는 종전 최대였던 2007년 4분기(720억달러)뿐 아니라 3분기 선진시장 증시에서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620억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신흥시장 증시 자금 조달액이 처음으로 선진시장을 넘어선 것은 중국과 브라질의 대규모 IPO가 주 요인이다. 중국 농업은행은 지난 7월 IPO를 통해 221억달러의 자금을 끌어모으면서 4년 전 공상은행이 세운 기록(219억달러)을 깼다. 지난달에는 브라질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가 700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IPO에 성공해 또 한 차례 기록을 경신했다. 두 회사의 IPO 규모는 미국 증시의 3분기 전체 IPO 규모(204억달러)의 5배에 육박하는 것이다.

폴 앳우드 헌팅턴투자자문 펀드매니저는 "작년 이후 신흥시장 증시가 많이 오르긴 했지만 향후 경제성장 전망을 감안하면 여전히 가장 매력적인 투자대상"이라며 "이런 점이 부각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IPO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 상하이증시와 브라질 상파울루증시 상장기업들의 내년 순이익 증가율은 각각 20%와 29%로,미국 S&P500지수에 속한 기업들의 평균 증가율(14%)을 훨씬 웃돌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삼성생명이 한국 증시 사상 최대(44억달러)의 IPO에 성공한 데 이어 만도 웅진에너지 현대홈쇼핑 휠라코리아 등이 차례로 IPO를 통해 순조롭게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신흥시장 증시에서의 '자금조달 붐'이 시장과열 신호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들이 증시에서 앞다퉈 자금을 조달한 뒤에는 주가가 약세로 돌아선 선례가 많기 때문이다. 마크 모비우스 프랭클린템플턴자산운용 회장은 "페트로브라스의 기록적인 IPO 규모는 신흥시장 증시가 '버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국내 증시 자금조달액이 상반기 약 5조5000억원으로 연간으로 따지면 2007년(약 17조원)과 작년(약 12조원)에 못 미칠 전망"이라며 "자금조달액만을 근거로 증시가 버블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