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를 잇는 家業 2.0] (1) 동신유압‥ '父子전쟁' 16년…부친 내공 배워 사출성형기 수출 6배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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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가 뛴다
대기업 엘리트가 '공돌이'로…3개국어 하며 삼성 근무하다 구매담당 직원으로 바닥 훑어
경영을 배우다…생산라인 중국 이전 갈등…아버지 소신이 결국 회사 키워
대기업 엘리트가 '공돌이'로…3개국어 하며 삼성 근무하다 구매담당 직원으로 바닥 훑어
경영을 배우다…생산라인 중국 이전 갈등…아버지 소신이 결국 회사 키워
한국경제신문은 절찬리에 연재했던 '대를 잇는 가업'의 2부 시리즈 '대한민국 산업 2세대가 뛴다'를 매주 금요일자에 새로 싣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가업을 승계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제조업 2세대들의 모습을 조망합니다.
"도저히 벽을 넘을 수가 없네요. 아버지께서 은퇴하시기 전에 이겨야 되는데…."
김병구 동신유압 전무(43)는 1994년 입사한 이후 부친 김지 사장(67)의 뒤를 이어 가업 승계 과정을 밟고 있다. 부산 사상공단 내 동신유압 본사에서 만난 김 전무는 그동안 인터뷰한 다른 경영인 2세와 달리 여유로워 보였다. 회사 일을 맡은 지 이미 16년.김 전무는 그동안 꽤 많은 성과를 냈지만 아직 배움이 끝나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에게 가업 승계의 완성은 '아버지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아직 그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자(父子), 사상공단에서 맞서다
3개국어를 구사하는 '대기업 엘리트' 출신 아들과 평생 기계밖에 모르던 '공돌이' 아버지의 '전쟁'은 1994년 시작됐다. 한 해 전 김 전무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때만 해도 부산에 내려가 기름때 투성이인 플라스틱 사출성형기 공장을 맡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1년 후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화들짝 놀라 부산으로 내려왔다. 김 전무를 제일 먼저 맞이한 사람은 정정한 아버지였다. 그렇게 김 전무는 동신유압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과정에서부터 아버지한테 당했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구매담당 말단 사원으로 시작했다. '부품과 원료를 사들이는 일을 하면 어디에 필요한 물건인지 빨리 파악하고 부품을 알면 전체 기계를 보는 눈이 생긴다'는 게 김 사장의 지론이었다. 김 전무의 초임은 44만원.근무했던 대기업의 절반도 안 됐다. "3개국어를 하는 인텔리인데 이런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고용하느냐"며 투덜거렸지만 "네 돈으로 공부했냐?"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입을 닫아야 했다.
김 전무는 "가업 승계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의 하나는 세대간 소통"이라며 "자수성가한 1세들의 특징은 완고하고 시대 변화보다는 자신의 성공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2세들은 부모와 임직원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좇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갈등 속에서 경영을 터득하다
부자는 여러 분야에서 의견차를 보였다. 김 전무는 "인사 업무를 맡았을 때 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직원이 병으로 사망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3일 동안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고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셨습니다. " 동신유압 건물에는 직원에 대한 김 사장의 배려가 곳곳에 배어 있다.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일반적으로 응접실이나 로비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곳에는 직원 식당이 있다. 임금이나 복지도 공단 내 최고 수준이다.
김 전무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였다. 직원들은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비용을 절감하고 업무 시간을 늘리는 등 정상화에 앞장섰다. 김 전무는 "위기에 빠지면 돈으로 이뤄지는 관계는 떠날 준비를 하지만 정으로 뭉친 가족은 하나가 된다는 점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경쟁사들이 사출성형기 생산라인을 중국 등으로 잇따라 옮기자 김 전무도 이전을 주장하고 나섰다. 중국산 저가 사출성형기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던 때였다. 2004년 540억원 규모이던 매출은 이후 급감하며 2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김 사장은 "기술자가 제품을 안 만들면 무엇하라는 얘기냐"며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이번에도 김 사장의 선택이 옳았다. 대기업들은 최근 다시 동신유압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중국 조립제품의 불량률이 높아지자 국내산 부품과 장비 발주를 늘리고 있는 것.그 결과 매출도 증가세로 돌아서 올해는 490억원 선에 이를 전망이다. 김 전무는 "43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아버지의 경영 마인드와 노하우는 여전히 나에게 거대한 벽"이라며 "벽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2세에 대한 시선, 정면돌파하다
김 전무는 "처음 입사했을 땐 회사에 마음을 두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2세 경영인은 TV 드라마와 달리 회사 적응 과정이 상당히 더딥니다. " 임직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정도로 썰렁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 전무는 "직원들보다 무엇인가 더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를 악 물었다. 김 사장은 김 전무가 성실하게 맡은 일을 처리해 나가자 외환위기 무렵 무역부장 자리를 맡겼고,김 전무는 '대박'을 터뜨렸다. 때마침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동신유압의 사출성형기가 해외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 10%에 불과하던 해외 매출 비중은 60%까지 올라갔다. 김 전무를 포함해 7명의 무역부 직원이 일궈낸 성과였다. 동신유압은 현재 60여개국에 사출기를 내보내고 있다. 김 전무는 지금도 수출 첨병 역할을 맡아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다.
부산=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도저히 벽을 넘을 수가 없네요. 아버지께서 은퇴하시기 전에 이겨야 되는데…."
김병구 동신유압 전무(43)는 1994년 입사한 이후 부친 김지 사장(67)의 뒤를 이어 가업 승계 과정을 밟고 있다. 부산 사상공단 내 동신유압 본사에서 만난 김 전무는 그동안 인터뷰한 다른 경영인 2세와 달리 여유로워 보였다. 회사 일을 맡은 지 이미 16년.김 전무는 그동안 꽤 많은 성과를 냈지만 아직 배움이 끝나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에게 가업 승계의 완성은 '아버지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아직 그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자(父子), 사상공단에서 맞서다
3개국어를 구사하는 '대기업 엘리트' 출신 아들과 평생 기계밖에 모르던 '공돌이' 아버지의 '전쟁'은 1994년 시작됐다. 한 해 전 김 전무는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그때만 해도 부산에 내려가 기름때 투성이인 플라스틱 사출성형기 공장을 맡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1년 후 아버지가 위중하다는 연락을 받고 화들짝 놀라 부산으로 내려왔다. 김 전무를 제일 먼저 맞이한 사람은 정정한 아버지였다. 그렇게 김 전무는 동신유압에 입사했다. 그는 "입사 과정에서부터 아버지한테 당했다"고 말했다.
김 전무는 구매담당 말단 사원으로 시작했다. '부품과 원료를 사들이는 일을 하면 어디에 필요한 물건인지 빨리 파악하고 부품을 알면 전체 기계를 보는 눈이 생긴다'는 게 김 사장의 지론이었다. 김 전무의 초임은 44만원.근무했던 대기업의 절반도 안 됐다. "3개국어를 하는 인텔리인데 이런 쥐꼬리 같은 월급으로 고용하느냐"며 투덜거렸지만 "네 돈으로 공부했냐?"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입을 닫아야 했다.
김 전무는 "가업 승계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의 하나는 세대간 소통"이라며 "자수성가한 1세들의 특징은 완고하고 시대 변화보다는 자신의 성공 방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2세들은 부모와 임직원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좇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갈등 속에서 경영을 터득하다
부자는 여러 분야에서 의견차를 보였다. 김 전무는 "인사 업무를 맡았을 때 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 직원이 병으로 사망한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는 3일 동안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고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셨습니다. " 동신유압 건물에는 직원에 대한 김 사장의 배려가 곳곳에 배어 있다.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일반적으로 응접실이나 로비가 있게 마련이지만 이곳에는 직원 식당이 있다. 임금이나 복지도 공단 내 최고 수준이다.
김 전무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것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였다. 직원들은 회사가 어려움을 겪자 비용을 절감하고 업무 시간을 늘리는 등 정상화에 앞장섰다. 김 전무는 "위기에 빠지면 돈으로 이뤄지는 관계는 떠날 준비를 하지만 정으로 뭉친 가족은 하나가 된다는 점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경쟁사들이 사출성형기 생산라인을 중국 등으로 잇따라 옮기자 김 전무도 이전을 주장하고 나섰다. 중국산 저가 사출성형기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던 때였다. 2004년 540억원 규모이던 매출은 이후 급감하며 2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김 사장은 "기술자가 제품을 안 만들면 무엇하라는 얘기냐"며 국내 생산을 고집했다. 이번에도 김 사장의 선택이 옳았다. 대기업들은 최근 다시 동신유압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중국 조립제품의 불량률이 높아지자 국내산 부품과 장비 발주를 늘리고 있는 것.그 결과 매출도 증가세로 돌아서 올해는 490억원 선에 이를 전망이다. 김 전무는 "43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아버지의 경영 마인드와 노하우는 여전히 나에게 거대한 벽"이라며 "벽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2세에 대한 시선, 정면돌파하다
김 전무는 "처음 입사했을 땐 회사에 마음을 두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2세 경영인은 TV 드라마와 달리 회사 적응 과정이 상당히 더딥니다. " 임직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정도로 썰렁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 전무는 "직원들보다 무엇인가 더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를 악 물었다. 김 사장은 김 전무가 성실하게 맡은 일을 처리해 나가자 외환위기 무렵 무역부장 자리를 맡겼고,김 전무는 '대박'을 터뜨렸다. 때마침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동신유압의 사출성형기가 해외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갔다. 10%에 불과하던 해외 매출 비중은 60%까지 올라갔다. 김 전무를 포함해 7명의 무역부 직원이 일궈낸 성과였다. 동신유압은 현재 60여개국에 사출기를 내보내고 있다. 김 전무는 지금도 수출 첨병 역할을 맡아 전 세계를 날아다니고 있다.
부산=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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