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얼굴,슬픈 얼굴,웃는 얼굴,아픈 얼굴,배고픈 얼굴,욕망의 얼굴….인간의 얼굴은 몇 가지로 표현될까.

미술평론가 박영택씨가 내놓은 《얼굴이 말하다》는 현대 미술에 나타난 인간의 수많은 얼굴이 품은 뜻을 읽기 쉽게 풀어낸다. 58명의 작가들이 내놓은 99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저자는 "얼굴은 다른 사람들이 읽도록 의도된 책,즉 사회적 텍스트"라고 이야기한다.

사진작가 주명덕은 6 · 25 전쟁 이후 태어난 혼혈아들의 사진을 고집했고,이종구는 양곡 부대에 농부의 초상을 그려 넣은 작품 '연혁-아버지'를 통해 가난한 농촌의 현실과 고단했던 우리네 아버지들에 주목했다. 김동유가 그린 '이승만'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촘촘하게 그린 김구의 작은 얼굴을 합쳐 완성한 이승만의 얼굴은 한 시대를 살았지만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인물에 대한 작가의 절묘한 패러디다.

오윤의 목판 '국밥과 희망'은 국밥 한 그릇을 놓고 손깍지를 낀 한 남자를 그렸다. 이 남자의 비장한 눈빛은 그들에게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를 말하는 듯하다. 표영실이 그린 '견디는 눈물'은 묘한 느낌을 준다. 흐릿한 화면 속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소녀는 울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울어본 적 있느냐'고 묻고 있는 듯하다.

저자의 말 처럼 사회적 텍스트로서 얼굴과 그 해석까지는 아니라도 갖가지 표정을 표현한 현대미술 작품 99점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한번쯤 들춰볼 만한 책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