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CC에서 열린다고 하니 더욱 우승 욕심이 나요. 올 시즌 미국 진출 이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국내 팬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꼭 우승할게요. "

'원조 스마일 퀸' 정일미(38 · 엔프리시스 · 사진)가 '메트라이프 · 한경 KLPGA 챔피언십'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정일미는 내달 16일부터 경기도 용인 88CC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 초청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다.

정일미는 KLPGA 챔피언십(옛 선수권대회)에서는 우승하지 못했지만 88CC와의 인연은 남다르다. 'JP컵여자오픈'(1999년),'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2001년),'한국여자오픈'(2002년) 등에서 우승컵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일미는 "88CC가 궁합이 맞는 골프장"이라고 말했다. "1997년 로즈 여자오픈에서 (박)세리와 연장 5번째 홀까지 가서 2위를 차지한 것도 88CC였어요. 이후 우승도 많아 기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장소가 바로 88CC죠.7년 동안 88CC에서 열리는 대회 때마다 캐디를 맡아준 언니도 생각나네요. "

지난해 11월 미국 자동차 컨설팅업체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정일미는 올해를 최고의 해로 만들기 위해 동계 훈련 때 구슬땀을 흘렸다. 자신감도 어느 때보다 넘쳤다. 하지만 시즌 초 몇 개 대회를 치르면서 성적은 기대에 못 미치고 부진이 이어지자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독기를 품고 올해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미국까지 와서 직업으로 삼은 골프가 마음대로 안 되니 모든 게 뒤엉켰어요. "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빠져나갈 틈만 찾고 있었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아니면 연말 일본에서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할까,대학원에 진학할까 등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어요. 그러다가도 연습라운드에서 잘 맞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골프를 쳐야되겠다는 현실로 돌아와요. "

정일미에게 큰 힘이 되는 골퍼가 한 명 있다. 지난해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대회인 USPGA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한 양용은이다. 지난 5월 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구경하러 갔다가 우연히 양용은을 만나 친구가 됐다. 양용은과는 생일이 같은 동갑내기다.

"경기 전날 최경주 양용은 프로와 저녁을 먹었어요. 다음 날이 대회니까 조심스러웠는데 양용은 프로는 '오히려 아는 사람이 와서 더 즐겁다'고 말했어요. "

정일미는 이후 양용은에게 골프에 대한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털어놨다. 볼이 안 맞을 때 어떻게 하는지,1m 퍼트를 남겨두고 긴장은 어떻게 해소하는지….'용감하게 쳐라'는 조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모든 선수들이 첫 티샷과 우승 퍼트는 떨리게 마련이고 또 피해갈 수 없으면 주눅 들지 말고 자신 있게 스윙하라는 것.

정일미는 1년에 한 번가량 본가가 있는 부산을 찾는다. 설계회사를 운영하다 은퇴한 아버지는 정일미가 고교 졸업한 후 한번도 골프대회를 찾은 적이 없다. "부모님의 얼굴이 한해,한해 달라요. 하지만 70대인 아버지는 한번도 흰 머리를 보여준 적이 없어요. 제가 갈 때면 염색을 하시는 거예요. 미국에 오셔서 골프대회 구경하시라고 하면 '혈압 올라갈지도 모른다'며 손사래를 쳐요. 메트라이프 · 한경 골프대회에서는 팬뿐만 아니라 부모님께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