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난달 기존주택 판매가 15년 만에 가장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주택시장 침체가 미국 경제의 '더블딥(반짝 경기 회복 후 재침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전국부동산협회(NAR)는 7월 기존주택 판매규모가 연율 기준 383만채로,전달 대비 27.2% 감소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5년 이후 월간기준 최저치다. 블룸버그 통신이 집계한 전문가들의 예상치는 14% 감소한 460만채 수준이었다.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기존주택 수는 2.5% 늘어난 398만채로 집계됐다. 현재 판매 속도로는 이들 물량이 소진되기까지 12.5개월 걸릴 것이란 계산이다. 이는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 주택시장은 이미 '더블딥'

미국의 주택판매 실적은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게 최대 80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주택시장 부양책이 지난 4월 말 종료된 이후 석 달 연속 급감하고 있다. 최초 주택 구입자가 주택매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달한다. NAR의 애널리스트들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차압당하는 주택이 늘면서 주택가격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데다 높은 실업률로 인해 주택구매 수요가 제한돼 앞으로도 주택거래가 극히 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크 잔디 무디스어낼리틱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CNBC에 "미국 주택시장이 더블딥에 빠졌다"고 단언했다. 기존 주택 판매규모가 급감하고 있으며 가격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더블딥'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월가의 은행 전문 애널리스트인 메르디스 휘트니 메르디스휘트니자문사 사장도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행들이 압류한 주택을 시장에 매물로 내놓으면 주택시장이 더블딥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부동산시장 조사업체 리얼티트랙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차압주택 수는 9만2858채로 전달보다 9% 증가했다. 올해 전체로는 100만건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매수세가 위축된 가운데 압류 매물이 시장에 흘러나오면 주택가격 하락은 불가피하다. 주택 가격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면 잠재 수요자들이 매수 시점을 늦추면서 주택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게 휘트니 사장의 설명이다. 도이체방크의 조지프 라프간 미국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고용시장이 회복세로 돌아서야 갇혔던 수요가 살아나 주택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채 수요 급증…'과열' 경고도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지고 고용 회복이 지연되는 등 '더블딥'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시장엔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채권형 펀드,특히 미 국채에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국채 가격이 과도하게 올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갑자기 돈이 빠져나가 금리가 오르면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이란 경고가 잇따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6월 말까지 최근 2년간 채권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4802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닷컴 버블(인터넷 거품) 때인 1999년부터 2000년 사이 주식형 펀드에 유입된 자금(4969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이다. 이 같은 자금 유입으로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전반적인 채권 금리가 속락했다. 반면 미국투자회사협회(ICI)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2320억달러에 달한다.

채권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철도회사인 노르폴크서던사는 2105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최장기(95년 만기) 채권 1억달러어치 발행을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2005년에도 100년 만기 장기 채권 3억달러어치를 연 6% 금리로 발행한 바 있다.
채권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데도 채권 부도 위험을 가늠하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가격은 떨어지고 있다. 그만큼 채권 투자 열기가 뜨겁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채권회사인 핌코는 내년 상반기까지 미국 경제 회복이 미약해 초저금리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고 투자전략을 세워왔다. 하지만 조엘 레빙톤 브룩필드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 이사는 "채권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지속될 수 없다"며 "언제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거품은 터지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박성완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