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잊지못할 그 순간] 한국법인 설립 때 고급차로 승부수…본사도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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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싸구려' 이미지 깨고 럭셔리 변신
물량 달려 독일서 비행기로 공수
1년 뒤 1000대 생산돌파 기념행사
'싸구려' 이미지 깨고 럭셔리 변신
물량 달려 독일서 비행기로 공수
1년 뒤 1000대 생산돌파 기념행사
"회사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어 큰 걱정이 없겠다"는 덕담을 가끔 듣는다. 2005년 1월1일 폭스바겐코리아를 설립해 매년 업계 상위권의 실적을 내면서 지난해 말까지 6배 넘게 성장했으니 주변에서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겠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 언제나 탄탄대로만 있을 수는 없다. 폭스바겐코리아 역시 크고 작은 고비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을 꼽자면 회사 설립과 동시에 폭스바겐의 대형 세단인 페이톤을 가장 먼저 출시하기로 했던 일이다. 폭스바겐이 유럽 최대의 자동차 브랜드였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딱정벌레 차인 뉴비틀을 만드는 회사 정도로밖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폭스바겐의 당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대형 세단으로 한국 내 사업을 시작한다는 데 대한 주위의 우려가 컸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확고했다. 유럽 최대 자동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이 자존심을 걸고 전용 공장까지 지어서 만든 대형 럭셔리 세단인 만큼 페이톤의 성공을 확신했다. 당시 수입차 시장이 대형 럭셔리 세단 중심이기도 했다.
페이톤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딜러사 직원들에게 심어주는 게 가장 중요했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판매 또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딜러사 직원들을 모두 모아 페이톤의 제품과 품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진행하며 판매 시작에 맞춰 만반의 마케팅 준비를 했다.
드디어 2005년 4월12일 페이톤이 론칭됐다. 다행히 출시 행사 후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초 200대를 계획했지만 판매 대수는 계속 늘어났다. 재고가 바닥나자 고객들은 쇼룸 전시용 차라도 인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물량이 모자라 급히 독일에서 60여대를 직접 비행기로 공수해오기도 했다. 폭스바겐 본사에서도 한국 소비자들을 위해 이례적으로 생산 공장을 4일간 특별 가동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2006년 5월 '한국시장을 위한 페이톤 1000대 생산 돌파'를 축하하는 자리를 독일 드레스덴의 페이톤 전용 생산공장에서 가졌다. 폭스바겐 자체 모델의 생산 기념식을 제외한 해외 지사를 위해 행사하는 것은 최초여서 매우 뿌듯하고 영광스러웠다. 당시 한국이 전 세계 페이톤 판매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주요 시장으로 성장한 만큼 기념식 자리에 폭스바겐의 주요 임원진과 생산 기술자들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표현했다. 페이톤은 이후에도 꾸준한 인기를 끌며 2007년 총 837대가 판매됐다.
페이톤의 성공을 기반으로 폭스바겐코리아는 수입차 시장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냈다. '작은 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에서 '페이톤'이라는 대형 고급차 모델을 가지고 있는 독일 자동차 회사로 이미지를 다져나갔고,전체 판매량이 5년 만에 6배나 늘었다.
이 같은 눈부신 성과 뒤에는 열심히 뛰어준 임직원들이 있다. 폭스바겐 브랜드 아래 강한 확신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서로를 믿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공 요인이었던 것 같다.
올 9월엔 신형 페이톤이 출시된다. 폭스바겐의 여러 직원들과 뜻을 모아 다시 한번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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