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박스권을 뚫고 나오면 상승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랜 시간 눌려 있어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되기 때문이다. 이달 초 코스피지수가 1770선을 넘었을 때도 이런 기대가 많았다. 이번에는 주가가 1년 이상 박스권을 지속했기 때문에 방향을 잡으면 위력이 더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주가가 고점을 뚫고 나온 후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주가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경기에 대한 우려가 시장을 눌렀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현재 밸류에이션이 낮지만 경기 둔화로 이익이 줄어든다면 의미 없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이런 투자 형태가 박스권 돌파 이후에도 지지부진한 주가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급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다. 지수대별 수익증권 흐름을 보면 코스피지수 1700대에서 10조원가량의 환매가 있었다. 펀드 보유자가 현금화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 만큼 1800선을 넘어서도 환매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주가 상승은 잠재된 매물을 소화하면서 이뤄져야 하므로 박스권 돌파에 따른 힘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시장이 국내 시장과 보조를 맞추면 그래도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현재 선진국 시장은 박스권의 고점을 훨씬 밑돌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국내 경제 사정이 좋아져도 주가가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느린 속도의 상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상승 속도가 느린 만큼 주도주가 만들어지지 못한 채 뒤떨어졌던 업종들이 돌아가며 오르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이종우 <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