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 상당의 징계를 받음에 따라 KB금융은 2002년 통합 국민은행 출범 후 선임된 3명의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의 수장들이 모두 불명예 퇴진한 데 대해 금융업계에서는 KB금융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함께 금융감독당국이 관치금융에 휩싸일 수 있는 사후 징계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감독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관치금융 논란 속 중징계

강 행장은 이날 해외투자 손실 등의 사유로 금감원으로부터 문책경고 상당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 3년간 국내 은행의 임원이 될 수 없다.

앞서 작년 9월에는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초대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투자한 파생상품의 손실에 따른 책임으로 업무집행정지 상당의 징계를 받고 최소 4년간 은행권에 복귀할 수 없게 됐다.

멀게는 2004년 8월 통합국민은행 초대 행장인 김정태 전 행장이 회계기준 위반과 관련해 문책 경고를 받고 두 달 뒤 퇴임했다.

3명의 CEO 모두 상당한 논란 속에 중징계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 전 행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징계를 받았을 때는 당국의 LG카드 지원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데 따른 보복성 징계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김태동 전 금융통화위원은 당시 "(LG카드 처리에 대해) 약간 투덜댄 은행장을 몇 달 지나서 몰아내겠다는 것은 관료들이 힘이 세졌다는 것이고 이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검찰은 작년 3월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 김 전 행장 등 당시 경영진을 기소유예했으며, 5년 전 김 전 행장과 함께 징계를 받았던 윤종규 전 부행장은 최근 KB금융의 재무관리최고책임자(CFO)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황 전 회장에 대한 징계 때는 경영상 판단에 따른 투자 관련 손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적합한지가 논란이 됐다.

일부에서는 퇴임 후에 발생한 세계적 금융위기에 따른 손실인 점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전대미문의 업무집행정지 상당 중징계를 내린 것과 관련,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시절 당국과 대립각을 세운 데 따른 보복성이라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강 전 행장도 보복성 징계 논란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강 전 행장은 작년 9월 KB금융 회장 선임 때 정권 실세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다른 후보들의 중도 사퇴와 당국의 만류 신호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면접에 참여했다.

이후 금감원이 작년 12월 중순부터 KB금융과 국민은행에 대해 유례없는 고강도 검사를 시행한 데 대해 강 전 행장이 괘씸죄에 걸린 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당국은 강 전 행장의 운전기사들까지 조사하면서 면담에 지각한 사유에 대한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으며 조사 직후 IT 팀장이 자살하는 일이 벌어져 강압 조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응 방식은 제각각

하지만, CEO 3명의 대응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당국의 징계로 연임이 불가능해진 김 전 행장은 2004년 10월 "여의도 앞을 흐르는 강물처럼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 물러나겠다"며 퇴임한 뒤 은행권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다.

반면 황 전 회장은 징계 직후 도의적 책임을 지고 중도 사퇴했지만, 징계 내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당국과 전면승부에 나섰다.

황 전 회장은 작년 12월 금융당국이 은행에 손실을 입힌 행위를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며 제재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강 전 행장은 작년 말 금감원 조사 직후 회장 내정자를 사퇴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임기 석 달을 남겨두고 행장에서 중도 사퇴하는 등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강 전 행장이 그동안 당국 징계에 대해 언급을 자제했던 점이나 미국 대학 연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점 등을 고려하면 당국의 징계를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경우 강 전 행장은 30여 년의 은행원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그는 1979년 씨티은행 뉴욕 본사에 입사해 뱅크스트러스트그룹과 도이체방크 한국대표를 거쳐 서울은행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국민은행장에 선임된 후 리스크 관리 위주의 꼼꼼한 경영 스타일로 꼴찌 수준이던 고객만족도를 최상위로 끌어올렸고 구 국민은행과 구 주택은행, 구 국민카드 노동조합의 통합도 일궈냈다.

2008년 초대 회장 선임 때 황영기 전 회장에게 밀렸던 강 행장은 작년 9월 황 전 회장의 사퇴 후 재도전해 결국 회장에 내정됐지만, 단독 면접을 강행한 것이 역풍으로 돌아와 회장직과 함께 행장 자리까지 내놓게 됐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KB금융과 국민은행 신임 CEO들은 전 CEO들이 모두 중징계를 받은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라며 "금융감독당국도 CEO 퇴임을 전후해 사후약방문식 징계를 하기보다 금융회사의 대형 부실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보복이나 관치금융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