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자네가 깔고앉은 돌이 단양 적성비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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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기행ㅣ조유전·이기환 지음ㅣBM책문ㅣ528쪽ㅣ2만4000원
1979년 2월24일 충북 충주시 가금면 입석마을.유창종 당시 충주지청 검사 등이 만든 문화재 답사 모임 예성동호회 회원들이 마을 입구의 입석을 살펴보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얼핏 보기엔 아무런 글자도 없는 백비(白碑) 같았지만 손으로 더듬으며 자세히 살펴 보니 삼면에 글자가 빽빽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우선 확인된 몇 가지 글자를 놓고 조선시대 경계비라는 설,신라 진흥왕 순수비와 같은 비석이라는 설 등이 분분했다. 그러나 김광수 당시 건국대 교수는 비석의 탁본에서 '고려(高麗)'라는 글자를 판독해 이 비석이 고구려 비임을 밝혀냈다. 지방의 향토 연구모임이 발견한 비석이 '중원 고구려비'로 판명난 순간이었다.
한국 고고학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조유전 경기도박물관장과 문화재 전문기자로 오랫동안 일해온 이기환씨가 함께 쓴 《한국사 기행》은 이처럼 발굴을 통해 드러난 한국사의 현장 곳곳을 누빈 답사기다.
엿장수가 수거한 청동기물이 기원 전 4~5세기 사람들이 남긴 귀중한 유물로 밝혀진 화순 대곡리 유적,발굴현장 조사원이 깔고 앉았던 돌이 신라 진흥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된 단양 적성비 등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8000년 전 만들어진 한국 최고(最古)의 선박이 발견된 창녕 비봉리 유적이 2003년 한반도를 덮친 태풍 매미가 준 선물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처음엔 우선 확인된 몇 가지 글자를 놓고 조선시대 경계비라는 설,신라 진흥왕 순수비와 같은 비석이라는 설 등이 분분했다. 그러나 김광수 당시 건국대 교수는 비석의 탁본에서 '고려(高麗)'라는 글자를 판독해 이 비석이 고구려 비임을 밝혀냈다. 지방의 향토 연구모임이 발견한 비석이 '중원 고구려비'로 판명난 순간이었다.
한국 고고학계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조유전 경기도박물관장과 문화재 전문기자로 오랫동안 일해온 이기환씨가 함께 쓴 《한국사 기행》은 이처럼 발굴을 통해 드러난 한국사의 현장 곳곳을 누빈 답사기다.
엿장수가 수거한 청동기물이 기원 전 4~5세기 사람들이 남긴 귀중한 유물로 밝혀진 화순 대곡리 유적,발굴현장 조사원이 깔고 앉았던 돌이 신라 진흥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된 단양 적성비 등의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8000년 전 만들어진 한국 최고(最古)의 선박이 발견된 창녕 비봉리 유적이 2003년 한반도를 덮친 태풍 매미가 준 선물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