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국회의원들 방을 다니다보면 두 달이 넘게 책상 한켠에 있는 책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5월에 완료된 감사원의 결산 감사보고서다. 정부의 예산 집행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살펴본 결과다. 하지만 어느 의원실에서도 감사보고서를 들춰본 흔적은 없었다. 여야 의원 모두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 · 보선에 '올인'하느라 결산심사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8월 들어서는 인사청문회라는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18일 만난 한 야당 의원은 "뭐 이슈가 될 만한 거리가 없느냐"고 물었다.

현행 국회법(제128조 2항)에 따르면 국회는 결산에 대한 심의 · 의결을 정기회 개회(9월1일) 전까지 완료해야 한다. 300조원에 이르는 지난해 예산 집행액을 심사하는 데 남은 시간은 불과 1주일.하지만 현재 국회 각 상임위원회는 청문회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예산결산심사에 한해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당초 여야가 23일부터 2009년도 예산결산 심사에 들어가기로 했던 합의도 유야무야됐다. 법을 어기고 9월에 계속 심의를 하더라도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돼 철저한 심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선 "예산결산심사를 새 장관의 군기잡기용 카드로 쓰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예산실 관계자는 "정부를 상대로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던 의원들이 정작 예산집행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짝이 없다"고 꼬집었다. 오히려 최근에는 결산심사에 관한 문의보다는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민원성(?) 전화가 훨씬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한 의원을 찾았더니 이 같은 언급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긴 했으나 좀처럼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지역구 인사와 친한 동료 의원들이 자신과 관련된 예산을 따내기 위해 1분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해왔다. 이 의원은 전화를 끊으며 "남들보다 앞질러 예산을 따놓지 않으면 지역구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웃었다. 감사원 책자에는 여전히 눈길조차 주질 않았다.

박신영 정치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