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50)은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G20 서울회의가 100일 앞으로 다가온 2일 인터뷰를 위해 준비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갑자기 잡힌 외부 회의에 참석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모습을 나타냈다. 만나자마자 "정신없다"는 말을 연거푸 쏟아냈다. 정상회의에 앞서 대통령을 대신해 회원국 간 긴밀한 사전 의견 조율을 해야 하는 셰르파(sherpa · 정상 대리인) 역할을 맡고 있어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매우 많다. 학자의 길을 걷다가 중도에 관료로 변신한 만큼 개인에 대한 질문을 여러 개 준비했으나 "지금은 오로지 서울정상회의가 잘 치러지도록 하는 게 개인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이창용 개인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말했다.

▼G20 서울 정상회의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준비는 잘 돼가는지요.

"솔직히 부담이 큽니다. 6월 캐나다 정상회의 때 많은 이슈들이 걸러져 넘어왔으면 했는데,그때 합의 안 된 것들이 모두 우리 쪽으로 넘어왔어요. 어려운 과제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어 좋은 결과를 얻으면 '주요 8개국(G8)이 아닌 나라도 이 정도 능력이 있구나'라고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것일 뿐 아니라 국제 논의 중심이 G8에서 G20으로 넘어오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합의가 안 되면 G8이 아닌 나라가 의장국을 맡아서 그렇게 된 거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야말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 게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이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 대해 물으면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농담을 합니다. "

▼가장 큰 애로점은 무엇인가요.

"노력한 것에 비해 결과물이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외교란 것이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고 받기이지 않습니까. 대체적으로 보면 주요 의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려는 분위기가 있지만 최근 들어 위기 국면이 지나면서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있어 의제 합의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준비위가 주로 하는 일이 매일 각국 정상회의 준비팀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하는 것입니다. 막힌 문제가 잘 안 풀리면 사공일 위원장까지 나서 해결하는 게 다반사입니다. "

▼위기 이후 회복 속도가 대륙별 · 국가별로 크게 차이가 나면서 글로벌 국제공조가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G20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서 G20이 아주 큰 역할을 해낸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실제 위기 초기 각국의 정책 공조를 통해 위기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기가 끝나면 G20 역할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판단이라고 봅니다. G20이 출범한 가장 큰 계기는 중국 인도 남미 등 힘 있는 신흥국가들이 빠진 G8 체제로는 변화된 글로벌 질서를 끌고 갈 수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전 세계를 논할 때 신흥국을 빼놓고는 얘기가 성립이 안 됩니다. 기술개발만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이머징마켓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G8은 기본적으로 유럽의 힘이 셌던 20세기 중반에 나왔던 체제이기 때문에 지금의 달라진 세계질서를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 이후에도 G20이 G8에 비해 유용한 포럼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서울 정상회의에서 여러 의제들에 대한 합의가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

"'개발 이슈'라든지 '글로벌 금융 안전망'등은 한국이 주도해 의제로 포함시켰기 때문에 흔히 '코리아 이니셔티브'라고 부르는데,이 부분에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이나 '국제금융기구 개혁' '금융구조 개혁' 등 기존 의제들은 우리가 처음 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 의제가 주로 선진국 중심의 위기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위기 이후,특히 개발도상국이 글로벌 금융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지속성장할 수 있는 수단 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11월 정상회의에서는 우리가 주도한 이슈뿐 아니라 기존 의제에서도 구체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물질적으로 어느정도 경제력을 갖춘 한국이 정책개발에서도 지적인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

▼은행세 도입과 관련,6월 캐나다 정상회의에서는 각국이 알아서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더 이상 논의는 안 되나요.

"캐나다 회의에서는 은행세에 대한 대원칙에 합의한 것입니다. 그것도 큰 성과라고 봅니다. 모든 나라가 동시다발적으로 도입하기로 해야만 합의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이슈에 따라 완전한 합의가 필요한 것이 있고,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세계적 동시 불황 때 각국이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은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출구전략은 회복 속도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야 합니다. 출구전략도 모든 나라가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은행세도 각국의 금융 환경이나 발전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국 상황에 맞도록 하자는 것이 원칙입니다. "

▼은행세를 특정 국가만 도입할 경우 글로벌 자본흐름에 왜곡이 생길 수 있는데요.

"유럽 국가들은 그것을 우려해 동시에 도입하자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각국이 알아서 하도록 한 만큼 글로벌 공조는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은행세 도입에 따른 규제 아비트러지(은행세 차이를 이용해 국제 간 자금거래를 하는 것)를 우려하는 미국과 유럽은 자체적으로 이를 보완할 2단계 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금융위 소관이라 답변하기 적절치 않지만 사실 우리는 1997년 예금보험제도 도입을 통해 이미 은행세 비슷한 것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은행의 위험자산에 부과하기보다는 공적자금 회수 목적으로 은행별로 일괄 부과하는 것이어서 다르긴 합니다. 일각에서는 은행의 외화 자산에 별도로 세금을 부과하면 외화유동성 불안을 줄일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

▼글로벌 금융안전망 관련,지금까지 논의 성과는 어떤가요.

"당초 우리의 아이디어는 중앙은행 간 통화 스와프에서 출발했습니다. 지난 금융위기 초기 한국은 미국 및 일본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유동성 위기를 잘 견뎌낸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주체가 되는 통화 스와프는 영속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스와프 역할을 국제통화기금(IMF)이 대신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게 우리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6개월간 IMF가 중앙은행 기능을 대신할 수 있도록 대출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논의 방향은 기존 구제금융처럼 사후대응 방식보다는 사전 대출제도를 강화하자는 쪽으로 맞춰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다자간 통화스와프를 준비하다가 여의치 않아 IMF의 대출제도 개선에 편승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는데, IMF의 대출제도 개편은 G20 의장국으로서 우리와 IMF와 공동으로 노력해서 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

▼개발 아젠다도 우리가 주도하는 이슈인데,어떤 내용이 담겨지나요.

"그동안 유엔 중심의 개발은 주로 빈곤 문제에,G8 중심의 개발은 유무상 원조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가 주장한 개발 아젠다는 두 가지를 보완해 단순한 시혜 측면이라기보다는 후진국이나 개도국이 스스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죠.그래서 인적자원 등에 대한 인프라 구축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