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인생의 앞자리 뒷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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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위공직자 대상의 특강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소위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공직자들이 학생으로 오는 자리이니만큼 기대가 컸다. 강사 또한 그 분야 최고 전문가였다. 그런데 강의실 문을 여는 순간, 필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강의실은 가득 찼는데 앞에서 두 번째 줄까지 아무도 앉지 않았다.
자리도 없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같이 온 지인에게 맨 앞줄에 앉자고 했다. 그러자 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는 절대 앞엔 앉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생에서 성공했다는, 좋은 대학에 좋은 위치에 있다는 고위 공직자들 역시 서로들 맨 앞자리를 피하려고 난리였다. 일부러 자리를 바꾸거나 자리가 있음에도 뒤에 서 있기를 자청했다.
이런 모습은 이 강의 뿐이 아니다. 앞자리 피하기 현상은 대한민국 어느 강의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강사가 오는 강의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유일하게 앞자리부터 꽉 차는 강의실은 대학입시 설명회나 주부상대인 노래교실 정도가 아닐까.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앞자리를 꺼려하는 경향이 생겼다. 사실 앞자리는 불편한 자리다. 말하는 사람의 눈이 느껴지니 다른 짓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집중하는 데는 앞자리만 한데가 없다. 앞자리는 말하는 사람의 열정이 느껴지는 자리인데, 뒷자리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알 수가 없다.
필자는 매주 다사모, 즉 차를 사랑하는 모임을 갖는다. 어느 한 분이 모임 때마다 맨 앞에 앉아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맨 앞에 앉으려면 이른 시간에 도착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이 맨 앞자리를 지켰다. 필자는 사람 얼굴 잘 기억 못하기로 유명하지만 수년 동안 항상 맨 앞에 앉은 그가 고마워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었다. “항상 맨 앞에 앉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그는 수줍게 대답했다. “제가 귀가 별로 좋지 않아서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맨 앞에 앉게 됐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귀가 잘 안 들려 앞에 앉았지만 앞자리에 앉다보니 적극적으로 발표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모임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지금 그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앞자리는 그의 차지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보청기를 착용했다면 아마 남들처럼 맨 뒤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한다. 늘 경청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경청하는 것은 단지 귀를 열어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잘 듣고 그런 다음 판단하고 행동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면서도, 가까이 가기를 꺼려한다. 앞으로 가기보다는 뒷자리에 앉기를 원한다. 뒷자리의 편안함 때문에. 그러나 사람에게 나쁜 습관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그 편안함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기업에서는 책임자를 뽑을 때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을 우대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빈틈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리더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앞자리를 피하고 뒷자리에 앉는 것은 제대로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앞에서 능동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하기보다 편안한 뒷자리를 원한다면, 영원히 인생의 뒷자리에만 앉게 될지도 모른다.
자리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일찍 와서도 남에게 앞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마라톤에서 선두를 내어 주는 거와 같다. 선두를 양보하고서 어찌 이기기를 바라는가. 앞자리가 불편한 자리이기 보다 성공에 한 발 다가가는 자리라고 생각해라. 어떤 모임이든 일찍 오면 앞자리에 앉고, 늦게 와도 앞자리에 앉아라.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의 앞줄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hooam.com/wh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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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도 없는데 마침 잘 됐다 싶어 같이 온 지인에게 맨 앞줄에 앉자고 했다. 그러자 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는 절대 앞엔 앉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인생에서 성공했다는, 좋은 대학에 좋은 위치에 있다는 고위 공직자들 역시 서로들 맨 앞자리를 피하려고 난리였다. 일부러 자리를 바꾸거나 자리가 있음에도 뒤에 서 있기를 자청했다.
이런 모습은 이 강의 뿐이 아니다. 앞자리 피하기 현상은 대한민국 어느 강의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교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강사가 오는 강의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유일하게 앞자리부터 꽉 차는 강의실은 대학입시 설명회나 주부상대인 노래교실 정도가 아닐까.
언제부턴가 우리사회는 앞자리를 꺼려하는 경향이 생겼다. 사실 앞자리는 불편한 자리다. 말하는 사람의 눈이 느껴지니 다른 짓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집중하는 데는 앞자리만 한데가 없다. 앞자리는 말하는 사람의 열정이 느껴지는 자리인데, 뒷자리에서는 절대로 그것을 알 수가 없다.
필자는 매주 다사모, 즉 차를 사랑하는 모임을 갖는다. 어느 한 분이 모임 때마다 맨 앞에 앉아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맨 앞에 앉으려면 이른 시간에 도착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꿋꿋이 맨 앞자리를 지켰다. 필자는 사람 얼굴 잘 기억 못하기로 유명하지만 수년 동안 항상 맨 앞에 앉은 그가 고마워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었다. “항상 맨 앞에 앉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그는 수줍게 대답했다. “제가 귀가 별로 좋지 않아서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맨 앞에 앉게 됐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귀가 잘 안 들려 앞에 앉았지만 앞자리에 앉다보니 적극적으로 발표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은 모임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지금 그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앞자리는 그의 차지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보청기를 착용했다면 아마 남들처럼 맨 뒤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한다. 늘 경청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경청하는 것은 단지 귀를 열어 놓으라는 것이 아니라, 잘 듣고 그런 다음 판단하고 행동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면서도, 가까이 가기를 꺼려한다. 앞으로 가기보다는 뒷자리에 앉기를 원한다. 뒷자리의 편안함 때문에. 그러나 사람에게 나쁜 습관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그 편안함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요즘 기업에서는 책임자를 뽑을 때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을 우대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빈틈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리더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앞자리를 피하고 뒷자리에 앉는 것은 제대로 듣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앞에서 능동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하기보다 편안한 뒷자리를 원한다면, 영원히 인생의 뒷자리에만 앉게 될지도 모른다.
자리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자리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일찍 와서도 남에게 앞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마라톤에서 선두를 내어 주는 거와 같다. 선두를 양보하고서 어찌 이기기를 바라는가. 앞자리가 불편한 자리이기 보다 성공에 한 발 다가가는 자리라고 생각해라. 어떤 모임이든 일찍 오면 앞자리에 앉고, 늦게 와도 앞자리에 앉아라.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의 앞줄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hooam.com/wh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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