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 22일 경기 수원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10대 소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기소된 최모(21) 씨와 조모(18)양 등 남녀 4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자백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에는 진술의 객관적 합리성, 자백 동기나 이유, 모순되는 정황증거 등을 고려해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기망 등으로 인해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최씨 등은 수사과정에서 가족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다른 피고인들이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오인하거나 검사가 자백하면 선처받을 수도 있다고 말해 자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피해 소녀와 아는 사이였는지, 사건이 발생한 고교에 정문과 후문 중 어느 쪽으로 들어갔는지, 문이 열려 있었는지 등에 대한 각각의 진술이 서로 모순되거나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고교 정문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최씨 등의 모습이 전혀 찍혀있지 않고 주위에서 싸우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으며 범행 현장에 이들의 지문 등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해보면 최씨 등의 자백은 진실성과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집을 나와 노숙생활을 하며 어울려 지내던 최 씨 등은 2007년 5월 수원역 대합실에서 노숙하던 김모(당시 15세)양이 자신들의 돈 2만원을 훔쳤다고 의심해 추궁하다 인근 고등학교로 끌고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2008년 1월 기소됐다.

애초 이 사건 범인으로 정모(31), 강모(31)씨 등 2명이 기소돼 정씨와 강씨가 각각 징역 5년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으나, 검찰은 추가수사 결과 최씨 등이 범행을 주도했고 정씨 등은 단순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기존 수사결과를 뒤집었다.

1심 재판부는 초동수사가 미흡해 물증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지만 범행을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최씨 등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최씨에게 징역 4년을, 조양 등 나머지 3명에게 단기 2년, 장기 3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최씨 등의 자백이 신빙성이 없고 공소사실을 인정할 다른 증거도 없다며 상해치사 혐의를 무죄로 선고했다.

최씨 등을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정씨와 강씨가 최씨 등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서 이들이 범인이 아님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위증죄로 추가 기소됐다"며 "수사기관이 섣불리 예단을 내려 엉뚱한 피해자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압적인 수사와 억울한 1년 옥살이의 책임을 묻는 국가배상과 정씨와 강씨의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며 "사건 발생으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수사기관이 사건 초기 단서들을 하나하나 다시 검토한다면 진범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나확진 기자 ra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