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휴가지로 미국을 선택하고 뮤지컬도 한 편쯤 보고 싶다면? 고민없이 첫 손가락에 꼽을 작품은 '위키드(Wicked · 마녀)'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51번가에 자리잡은 거쉬윈극장이 주 공연장.하지만 다른 도시에 가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샌프란시스코,밀워키,콜럼버스,미니애폴리스,보스톤에서 순회팀이 같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를 비롯해 독일,호주,일본에서도 공연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을 뿐 '위키드'는 전 세계 뮤지컬 업계를 휩쓸고 있는 최고의 화제작이다.

◆전 세계는 '마녀'에 열광

20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공연된 '위키드'는 같은 해 브로드웨이로 자리를 옮겨 7년째 흥행가도를 달린다. 2000년대 등장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 최고 히트작답게 온갖 기록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 세계 '위키드'공연의 누적매출은 18억달러(약 2조17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초 뉴욕 거쉬윈극장은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높은 주간 박스오피스 매출(210만 달러 · 약 25억원)을 기록했다. 2006년에 첫 선을 보인 런던에서도 지난달 역대 최고 매출(1억 파운드 · 약 1800억원)을 올렸다. 영국의 '더타임즈'는 "24년 전 '오페라의 유령'이 나온 이후 가장 거대한 뮤지컬"이라고 극찬했다. 최근 한 마니아 관객이 런던 아폴로 빅토리아극장의 공연을 몰래 녹화해 유튜브 등에 올렸다가 한바탕 난리를 치르기도 했다.

최신작도 아닌 뮤지컬이 이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뮤지컬의 특성상 최소 1~2년,많게는 4~5년 이상 꾸준히 인기를 끈 후에야 입소문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해외 관광객이 주요 고객인 브로드웨이는 물론이고 미국 밖으로 진출하는 대형 히트작들의 흥행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는데 '위키드'는 올해 절정기에 진입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의 전편에 해당된다. 1995년 그레고리 맥과이어가 출간한 '위키드: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했으며 고전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비틀었다. 도로시가 강아지 토토와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 오즈의 세계로 날아가기 전,이미 그곳에 살던 초록색 서쪽 마녀 '엘파바'와 금발의 착한 마녀 '글린다'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글린다는 야망을 품은 애교 만점의 인기녀,엘파바는 착하고 똑똑하지만 주류에서 소외된 왕따라는 설정이 독특하다. 두 마녀의 우정과 인생 여정은 단순한 판타지를 뛰어넘는다.

작사 · 작곡을 맡은 스테판 슈워츠의 뮤지컬 넘버들은 감미롭고 웅장하다. 14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무대는 시계추와 바퀴,거대한 용으로 꾸며졌다.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은 관객들을 마법의 도시 '에메랄드 시티'로 인도한다. 지능을 얻고 싶어하는 허수아비와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뭇꾼,겁쟁이 사자 등 친숙한 캐릭터까지 전부 등장한다. 연인들은 물론이고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객에게 더할나위 없는 작품이다.

◆뉴욕과 런던의 또다른 추천작 '빌리''유령2'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양 쪽에서 동시에 공연되는 작품 중에는 내달 LG아트센터에서 한국판으로도 선보이는 '빌리 엘리어트'를 주목할 만하다. 영국 탄광촌에서 발레리노의 꿈을 키워가는 소년 빌리의 얘기.런던 공연이 오리지널이다.

앤드류 웨버의 신작 '오페라의 유령2:사랑은 결코 죽지않는다'도 두 도시에서 다 볼 수 있다. 크리스틴과 라울이 결혼해 아이를 낳은 지 10년,죽은 줄 알았던 팬텀과 재회한다는 내용이다. 아직 '오페라의 유령'이 계속되는 만큼 1,2편을 연이어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이 밖에도 '멤피스' '프라미시즈 프라미시즈' '아담스 패밀리' '시카고' '아메리칸 이디엇' '메리 포핀스' '넥스트노멀'(이상 브로드웨이),'올리버' '씨스터 액트' '금발은 너무해' '맘마미아'(이상 웨스트엔드)도 추천 대상이다. 웨스트엔드에서는 다양한 라틴춤으로 구성된 '번 더 플로어'나 '더티 댄싱' '플래시 댄스'를 선택해도 좋다.

인기작일수록 티켓판매 사이트에서 예약하는 게 필수적이다. 여권과 인쇄된 예약증을 제시하면 현장에서 표를 받을 수 있다. 가격은 다소 비싼 편이다. '위키드'의 정가는 10만원대~30만원대.현장에서 구매하려면 여행 첫날 해당 극장을 찾아가거나 20~50% 할인표를 파는 티켓 박스에서 줄을 서야 한다. 단체 관광이라면 여행사에 공연표 구매를 대행시키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