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노양진씨(27)는 얼마 전 연극 공연 중 무심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연기가 아니라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잡고 사는 노씨의 무의식적인 습관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휴대폰 좀 놔두라”는 잔소리를 듣지만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스마트폰 한 달 이용료는 15만원에 달한다.

스마트폰으로 주로 음악, 영화, 단문메시지를 즐긴다는 그는 “스마트폰에 집중하다 타야 하는 버스를 보내버리거나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친 적이 많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달 애플 아이폰, 삼성 갤럭시S 등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220만 명으로 올해 말까지 4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손 안의 작은 컴퓨터’로 불리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활발해지며 이동 중 업무처리, 간편한 은행업무 등 사용자들의 생활은 더욱 편리해지고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밀착된 다양한 기능들은 노씨와 같은 ‘스마트폰 중독’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경닷컴이 19일, 20일 이틀간 네이버 스마트폰 카페 회원 612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설문조사한 결과, 스마트폰 사용자 중 약 44%가 “스마트폰에 중독된 것 같다”고 답했고 52%는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기 힘들다”고 고백했다.

‘스마트폰 사용 후 책 읽는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이 줄었다’는 사용자는 23%, ‘스마트폰이 학업이나 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답변자는 40%에 달했다.

◆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이 자꾸 나를 자극한다”
스마트폰은 일반 휴대폰보다 활용 범위가 넓다. 간편한 동영상 촬영, 빠른 인터넷 접속 외에도 실감나는 게임 플레이, 업무 처리, 영화 감상 등 다양한 기능이 있다.

무엇보다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기능을 자유자재로 추가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아이폰 사용자를 위한 애플의 앱스토어에는 현재 20만 개의 애플리케이션이 등록돼 있다.

스마트폰 카페 회원 전영우(29)씨는 “알람부터 스케줄 관리, 은행업무까지 생활 속 대부분의 일을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훨씬 빠르고 간편하다”고 말했다.

메리 미커 미국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 휴대폰 사용자의 경우 전체 휴대폰 사용시간 중 약 30%만 통화 이외의 용도로 이용했지만 스마트폰 사용자는 평균 55%를 부가 기능 활용에 투자했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통화 이외에 인터넷, 음악 듣기, 동영상 감상, 앱 등을 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한국인터넷진흥원의 조사).

이처럼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사용자들의 이용시간이 늘어나면서 ‘중독’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희원 청소년미디어센터 미디어중독예방센터 실장은 “기존 매체의 기능을 모두 반영한 스마트폰은 인터넷, 게임, 휴대폰 중독을 함께 흡수할 수 있다”며 “스마트폰은 하드웨어적인 공간이 필요 없고 이동성이 좋아 중독이 더 쉬울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인터넷 중독자 수가 전체 사용자의 8.5%인 것으로 볼 때, 앞으로 스마트폰 중독자 역시 이와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마트폰 중독' 우려가 점차 현실화되며 미국의 디지털 정보 웹사이트 ‘디지털 트렌즈’는 ‘스마트폰 중독의 열 가지 신호'를 게재하기도 했다.

◆ 내 여자친구는 ‘스마트폰’?…심리적 의존 경향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길어지며 나타나는 ‘중독’ 증상이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한경닷컴 조사에 응한 네이버 스마트폰 카페 회원들은 “스마트폰 만나고 가족과의 대화가 많이 단절됐다.”(ID 꼬마), “자기 얘기를 듣지 않고 자꾸 휴대폰을 들여다 봐 여성들은 스마트폰 가진 남성을 싫어한다”(ID 마인부우)는 등의 답변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여, 손에서 놓기 힘들어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기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인터넷, 휴대폰 중독과 같이 기기에 심리적으로 의지하게 되면 그것이 없을 때 주도적으로 생활하기가 힘들고 박탈감과 공허함을 느낀다.

이는 인간관계나 학업, 일 등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스마트폰 사용자 곽문선(31) 씨와 전영우(29) 씨는 각각 “주변에서 보면 스마트폰으로 주식에 열중하는 남편들이 종종 아내를 소홀히 하기도 한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직장동료는 회사에서 충전기를 꽂아 놓고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강은호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스마트폰은 중독은 업무와 휴식시간의 경계를 없애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이는 작은 화면에 집중해 게임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 ‘스마트폰 중독’ 청소년 더 우려…예방교육 이뤄져야
2008년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 중독자(199만9000명) 중 청소년 중독자의 비율은 50% 이상이다. 휴대폰 중독률 또한 전체 중독자의 71.5%를 차지했다.

이러한 전례에 비춰, 스마트폰 중독 역시 청소년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는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A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얼마 전 스마트폰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주의를 준 일이 있었다”며 “스마트폰은 평면에 터치형식이라 학생들이 책상에 올려놓고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기 쉽다”고 설명했다.

또 조원희 미디어중독예방센터 실장은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들은 특히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다”며 “스마트폰이 이러한 욕구와 결합해 ‘오장풍 폭력교사’ 고발과 같은 순기능을 할 수도 있지만 중독이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이 미리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0년대 말 휴대폰이 나오고 2000년대 ‘휴대폰 중독’ 문제가 부상했듯 스마트폰도 보급률이 더 높아지기 전,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청소년미디어센터측은 “내년 쯤 스마트폰 사용인식 교육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경닷컴 강지연 인턴기자 ji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