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영업] 소비패턴 변화 못 따라간 골목상권…경기회복은 '그림의 떡'
경제활동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은 한국 경제의 '풀뿌리'나 다름없다. 이런 자영업자들 입장에서 보면 최근 빠른 경기회복은 '그림의 떡'이다. 각종 지표상으로 경기가 급속도로 좋아진다고 하지만 정작 자영업자들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기를 겪으면서 자영업자들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경기회복 과정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양극화 현상의 최대 피해자가 자영업자들이라고 입을 모은다. 때문에 서민경제를 대표하는 자영업자들의 체감경기를 살려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자영업자 몰락 실태

통계청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인 음식 · 숙박업의 취업자는 지난 1월 작년 같은 달과 비교해 7만9000명 감소하는 등 올해 들어 매달 수만명씩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에도 7만4000명이나 감소했다. 도 · 소매업 역시 올 3월부터 지난달까지 매월 3만~5만명씩 취업자가 사라지고 있다.

자영업자가 문을 닫으면 거기에 딸린 무급 가족종사자도 함께 실업자 대열로 접어든다. 1월 무급 가족종사자 수는 100만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8년 8월의 150만명에 비해 3분의 1 정도 줄었다. 자영업주와 함께 구조조정된 것이다.

이 같은 감소는 자체 구조조정에 기인한 바 크다. 최근 몇 년간 도 · 소매업과 음식 · 숙박업에서는 대형화와 프랜차이즈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형마트가 들어선 곳에선 인근 영세 가게들이 사라지고,프랜차이즈 음식점이 생기면서 동네 식당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또 최근 각광받고 있는 피부미용 등 보건 · 복지업 등으로 업종을 변경하는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최근의 빠른 경기 회복세를 감안하면 구조조정은 취업자를 늘리지 않는 정도에 그쳐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결국 대기업 수출 위주의 경기회복에서 소외된 자영업자들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씀씀이까지 줄어들면서 자영업의 생존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며 "대다수 자영업의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라고 말했다.

◆과거보다 상황 더 심각

[위기의 자영업] 소비패턴 변화 못 따라간 골목상권…경기회복은 '그림의 떡'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자영업자 수가 줄었던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과거와 달리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데도 자영업은 좀처럼 나아질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자영업 기반이 아예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통계작성이 시작된 1966년 이후 자영업자 수는 계속 늘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3분기(평균치)에는 604만7000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위기가 터지면서 1998년 1분기 540만1000명으로 급감했다. 이후 외환위기 직전인 600만명 수준으로 다시 회복하기까지 3년 정도 걸렸다. 2002년 3분기에는 사상 최고치인 629만9000명까지 치솟았지만 '카드사태'가 터지면서 2003년 1분기 다시 586만4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카드사태는 무분별한 카드 발급과 사용으로 연체가 늘어나면서 카드사들이 부도 위기에 몰렸던 것을 말한다.

자영업자 수는 이후 다시 늘어났지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3분기 이후 600만명 이하로 추락한 뒤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올 1분기는 551만4000명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9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최경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쟁력이 약한 자영업은 원래 회복 속도가 느린데 이번에는 아예 회복 대상에서 제외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자영업 살려 체감 경기 높여야

전문가들은 최근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양극화 문제 해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영업을 살려 체감 경기를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민 경제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자영업의 몰락을 이대로 방치하면 진정한 경기 회복을 이뤘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새 참모진에 "서민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통계 수치가 좋아졌다고 경제가 진짜 살아난 게 아니다"며 "자영업이 망하면 정치 · 사회적인 불안이 커지기 때문에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성장률을 5.8%로 전망하는 등 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고 자신하는 정부가 이제는 양극화 해소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지방선거 패배 이후 밑바닥 민심이 어떤지를 깨닫고 있다"며 "올 하반기에 자영업을 지원하고 독주하는 대기업을 견제하는 양극화 해소 방안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