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았다.국립발레단이 지난 15일부터 ‘롤랑 프티(Roland Petit)의 밤’이란 이름으로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고 있는 롤랑 프티의 모던 발레 작품들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20세기 유럽 발레를 대표하는 안무가인 롤랑 프티의 작품 세 편 중 ‘아를르의 여인’(1974)을 빼면 ‘젊은이와 죽음’(1946)과 ‘카르멘’(1949)은 모두 1940년대 작(作).60여년만에 한국에 상륙해 국내 젊은 발레 무용수들에 의해 완벽하게 되살아난 느낌이다.모던 발레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이 보기에도 더없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과 ‘죽음’.맺어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미칠듯한 그리움(‘아를르의 여인’)이나 사랑하는 여자로부터 받은 조롱과 거부(‘젊은이와 죽음’,‘카르멘’)는 결국 자살과 살인으로 귀결된다.20대의 롤랑 프티가 그려낸 사랑은 열정적이기에 그만큼 처절하다.

이원철과 윤혜진이 열연한 ‘젊은이와 죽음’은 당초 롤랑 프티가 재즈음악에 기반해 안무한 것으로 알려졌듯이 재즈의 느낌을 안고 있다.여자를 기다리며 다락방 침대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남자는 탁자와 의자 위를 넘나들며 춤춘다.찾아온 여자와 나누는 애증의 몸짓,그러나 자살을 부추기는 걸까.여자는 천장에 매달린 밧줄을 가리키고 남자는 결국 목을 맨다.그리고 무대는 파리 시내 야경이 보이는 옥상으로 변하고 죽음의 여신이 찾아온다.한 편의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줄거리와 갈등 구조가 단 번에 파악되는 동시에 드라마의 감동이 극대화된다.

긴 팔과 다리,팜므파탈의 카리스마를 가진 윤혜진은 이번 공연에서 주목해야 할 발레리나 중 하나다.김지영과 함께 카르멘 역을 맡기도 한 그녀와 오랜만에 국립발레단 작품에 합류한 이원철의 춤,연기는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강렬하다.

역시 탄탄한 기본기와 안정된 춤실력을 뽐내는 김지영·김현웅 커플의 ‘카르멘’도 관객들의 ‘브라보’세례를 받았다.짧은 커트 머리에 코르셋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은 카르멘이 방에서 호세를 유혹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밀고 땡기고 몸이 포개질 듯 현란한 동작들이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아를르의 여인’에서 비중있는 주역 프레데리를 연기한 윤전일은 국립발레단의 새내기 무용수다운 힘과 열정을 보여준다.창 밖으로 몸을 날리는 마지막 점프는 새로운 스타 남자 무용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같은 인상마저 준다.

고전 발레와 달리 남자 무용수들의 비중이 큰 점,무대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의자 등의 도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점,발과 다리가 인(in)과 아웃(out) 동작을 연이은 움직임 등은 고전 발레를 선호하던 팬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15~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5000~12만원. (02)587-6181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