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연출해보니 해프닝성 이야기보다 깊이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재미를 추구하던 데서 삶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쉰 살이 되니 묘하게도 사람을 보는 방식이 달라져요. 눈 · 코 · 입 같은 겉모습이 아니라 어떤 성향일까를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사람이 과연 선한가 악한가,악하다면 정말 뼛속까지 악한 존재인가를 묻습니다. "

'충무로 파워맨' 강우석 감독(50 · 사진)은 신작 '이끼'(14일 개봉)의 연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만화가 윤태호씨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이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폐쇄적인 농촌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는 주인공(박해일)의 활약을 담은 스릴러.등장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인간의 본성을 되새겨보도록 이끈다.

이 작품에는 강 감독이 대주주인 투자배급사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가 절반씩 총 80억원을 투자했다.

1일 서울 충무로의 시네마서비스 본사에서 강 감독을 만났다.

"연출과 감독이 (화면에) 드러나면 실패할 영화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출연진에게 '완벽한 배우들의 영화'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마다 게임에 쓰이는 도구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일 것을 주문했죠.등장 인물들의 존재감을 살리기 위해 등장과 퇴장을 명확히 하다보니 상영 시간이 2시간38분으로 길어졌습니다. "

처음에는 배우들의 심적 부담감이 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대화를 통해 교감을 넓혔다. 나중에는 똘똘 뭉쳐 화재 신에도 몸을 던질 정도로 적극성을 보였다고 한다. 자신의 배역을 돋보이게 하려면 상대 역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저마다 기존 이미지를 뒤집었습니다. 정재영이 70대 노인역을 하리라곤 상상 못할 일이죠.박해일은 흐느적거리는 몸짓이 아니라 강렬한 눈빛으로 감정을 표출합니다. 부드러운 유해진은 광기와 절규의 인물로 바뀌었고요. 허준호는 현대의 예수같은 배역이죠.그는 강한 남자에게 숨겨져 있는 여성스러움을 갖고 있습니다. "

강 감독은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방법에도 사람을 적극 활용했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대신 정황을 명확히 설명함으로써 관객들을 설득한다. 흉기나 파충류 등 엽기적인 장면으로 놀래키는 것은 하수라고 본 것이다.

"단순한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래서 식자 층도 이 영화를 게임하듯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넓은 관객층을 포섭하지 못했던 기존 스릴러 장르의 한계도 넘어설 것입니다. 웃으면서 공포를 즐기도록 이끄니까요. "

그는 원작 만화와 가장 다른 점은 유머코드라고 말했다.

"원작의 매력은 한국적인 공포를 잘 포착한 데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들었을 법한 무서운 이야기말이죠.다만 너무 엄숙해 지루해지기 쉬운 게 약점이었지요. 저는 가급적 가볍고 밝은 톤으로 바꾸려했습니다. 공포와 공포 사이에도 유머를 얹었고요. 가령 도끼를 들고 추격하는 장면에서도 중간 중간 코미디를 집어넣었습니다. 그게 먹혀들지 않으면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것을 극복하면 긴장감이 배가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강 감독은 또 원작 만화의 영상미를 고스란히 옮기기 위해 전북 무주에 대규모 마을 세트를 짓는 등 미술비에만 20억원을 투자했다. 영상미가 만화에 뒤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것이다. 제작비도 당연히 증가했다. 시네마서비스의 지분을 담보로 CJ그룹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동원했던 '실미도'를 비롯해 '미스터 맘마'(1992년) 이후 11편의 연출작이 모두 흥행에 성공했지만 더 많은 투자 작들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박' 뒤에는 쪽박이 따라붙으니까 항상 적자였습니다. 영화는 도박산업이란 말이 참 어울립니다. 도박을 오래하면 따는 사람은 장소 제공자뿐이죠.극장만 돈을 법니다. (영화도) 땄을 때 바로 튀면 돈을 법니다. 그러나 저는 태생적으로 감독입니다. 대박을 터뜨리면 몇 편 더 만들 것인가란 계산이 앞섭니다. "

'실미도'를 촬영할 당시 건배사를 1000만명으로 했던 그는 "이끼'가 '미성년자 불가'란 점을 고려한다 해도 500만명 정도 들어오면 회사나 개인적으로나 좋겠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