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 경영상] 전문경영인 부문‥ 배영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
배영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66)은 1970년 코오롱의 전신인 한국나일론에 입사한 뒤 코오롱그룹에 40년간 몸담아 왔다. 임원 생활만 올해로 21년째,최고경영자(CEO)로는 12년째를 맞은 코오롱의 대표 CEO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배 사장을 가리켜 '화투 뒷장이 잘 붙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가 코오롱유화 사장 시절 매년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을 농담삼아 빗댄 표현이지만,이 회장이 한 공개석상에서 회자시킨 뒤 이제는 사내에서 별명처럼 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단순히 운 좋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화투판에서 돈을 따기 위해서는 필요한 순간에 원하는 '뒤패'를 뒤집어야 하듯,회사 경영에서도 제때 원하던 결과물을 낼 줄 아는 경영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 사장이 경영 수완을 보인 것은 부장 때부터다. 1981년 뉴욕지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에게 맡겨진 자리는 타이어코드담당 부장.당시 타이어코드사업부는 가동률이 50%도 안 되는 만년 적자 부서로,담당 부장 역시 기피 대상 1호 보직이었다. 사업 구조를 찬찬히 뜯어본 그는 판매구조가 잘못됐다는 데 착안한다. 전체 판매 물량의 70% 정도가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 한곳에 몰려 있는 천수답 구조로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판매선 다변화가 해답이지만 그는 그중에서도 정공법을 택한다. 세계 1위 업체인 굿이어를 뚫으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되리라는 기대와 함께.1년6개월가량의 끈질긴 노력 끝에 30년간 구매 업무만 맡아온 굿이어 담당자의 마음을 움직여 납품 승인을 받아냈다. 그가 얼마나 자주 굿이어를 찾아가고 전화를 해댔던지 지금도 '미스터 톰슨'이라는 구매 담당자의 이름을 생생히 기억한다. 굿이어 공략에 성공한 이후에는 그의 예상대로 브리지스톤 미쉐린 컨티넨털 요코하마 등 세계 빅10 업체들과 줄줄이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타이어코드사업부는 그가 부장을 맡은 지 2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 지금까지 26년간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배 사장은 이후 주변에서 '소방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소방수 역할은 1998년 코오롱제약 사장을 맡은 후 또 한번 진가를 발휘한다. 코오롱제약은 당시 외환위기까지 겹쳐 부도 직전의 상황에 몰려 있었다. 타이어코드사업부의 문제가 판매구조였다면,코오롱제약은 잘못된 영업 관행에서 비롯된 조직문화가 최대 장애물이었다. '본질로의 접근'을 즐기는 그는 이번에도 영업 관행에 곧바로 손을 댔다. 장부상 실적을 맞추기 위한 꼼수로,결국 회사 체질을 곪게 만든 주범이 된 밀어내기를 근절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약국에 제품 공급 후 270일이나 걸리던 대금 회수 기간을 120일로 줄였다. 코오롱제약도 사장 취임 2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바꿔놨다.

그는 타이어코드사업부장과 코오롱제약 사장을 통해 '죽은 조직'을 살려내면서 뚜렷한 CEO관을 갖게 됐다. "경영자는 의사입니다. 의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환자의 병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병에 맞는 약을 쓰는 거죠."

배 사장은 2006년 1월 ㈜코오롱(현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에 오른다. 그룹 주력사 수장이라는 영예로운 자리지만 한편으론 큰 도전이기도 했다. 민주노총 최대 강성 노조가 자리잡고 있던 ㈜코오롱은 파업과 적자로 'CEO들의 무덤'이기도 한 곳이었다. 사장 취임식 전날 그에게 자극제가 된 것은 닉 라일리 GM대우 사장과 현대중공업이었다. 외국인인 라일리 사장이 GM대우 노조위원장과 노사 상생을 기원하며 인천 앞바다에서 찍은 신문 사진 한 장과 '과격 노조'의 대명사에서 14년째 무분규 노조로 탈바꿈한 현대중공업의 사례가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배 사장은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뜻밖의 선물을 준다. 생산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빚진 술값을 갚고 일에 전념하라는 뜻에서 빳빳한 신권으로 1인당 100만원씩을 나눠줬다. 그렇다고 그가 총 20억원 정도의 비용을 회사돈 들여 생색내는 포퓰리스트는 아니다. 사장에게 주어진 골프장 회원권과 공장 방문 때 이용하는 에쿠스 자동차 등을 처분하고 비서 숫자도 2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그는 노조 사무실은 물론 노조 대의원대회 회의장까지 직접 찾아가 "고용 보장을 약속할 테니 흑자 때까지 임금 동결,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에 따른 인력 재배치에 동의해 달라"고 설득했다. 이 같은 노력은 큰 결실을 맺었다. 사장 취임 이듬해인 2007년 코오롱 노사는 동국제강에 이어 국내 기업 두 번째로 '항구적 무분규 선언'을 했다.

올 1월 지주회사로 변신한 ㈜코오롱의 사업 자회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의 매출은 배 사장 취임 당시 1조80억원에서 사업 구조조정과 영업 호조 등에 힘입어 지난해 2조215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는 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은 2006년 338억원에서 지난해 1800억원으로 5배 이상 뛰었다.

글=윤성민/사진=신경훈 기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