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들이 자문형 랩 시장에 잇달아 뛰어들고 있다. 그동안 투자자문사들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져 왔으나 최근 급신장하고 있는 신시장을 나몰라라 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은 자본시장법상 펀드 운용뿐 아니라 투자자문 및 일임업을 영위할 수 있어 사업 확장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황이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동향실장은 "고객의 자산 규모가 커지고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개인별 자산관리서비스의 일종인 자문형 랩 시장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문사와 자산운용사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운용사 랩 자문업 잇단 진출

국내 주식형펀드 운용자산 상위사 중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은 이미 랩 자문을 시작했으며 KTB자산운용도 이르면 내주부터 본격 개시할 예정이다. 한국밸류운용은 지난 2월부터 삼성증권의 '삼성SMA 한국밸류'랩에 대한 운용을 자문하고 있으며,지난 15일부턴 우리투자증권의 '한국밸류플러스'랩의 운용도 조언하고 있다. 이 상품들은 기존 랩과 달리 종목 수가 20개 정도로 많으며 종목 투자 비중도 동일하게 운용되고 있다. 기존 가치투자 운용철학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다.

삼성운용도 지난 4월 정원석 브레인투자자문 이사를 전략운용팀장으로 영입한 후 삼성증권의 '삼성SMA 3대그룹집중형랩'에 대한 자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3대그룹 집중형 랩은 삼성 현대기아차 LG그룹 위주로 투자한다.

KTB운용도 이르면 내주,늦어도 7월 중에는 랩 자문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2개 증권사와 랩 출시에 대해 합의하고 시기를 조율 중이다. 이 운용사는 기존 자산 배분쪽의 강점을 특화한 자산 배분 방식의 자문형 랩을 준비하고 있다. KTB운용 관계자는 "기존 전략리서치본부 내에 있는 모델포트폴리오팀의 인원을 보강하고 프로세스도 새롭게 구축했다"고 말했다.

ING자산운용도 신규 진출을 확정한 상태며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진출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한국투신운용 KB자산운용 등은 시장 추이를 지켜보며 대응할 방침이다.

◆시장 '관망'에서 '공략'으로



자산운용사들은 초기 '자문형 랩' 시장의 성장에 부정적이었다.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 자문형 랩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작년 3월 말 284억원에 불과했던 자문형 랩 규모는 1년 만인 지난 3월 말 6516억원으로 급증한 후 4월 말엔 1조506억원까지 불어났다.

운용업계는 증권사들의 자문형 랩 판매와 운용 전반에 '불법 소지가 있다'는 문제도 제기했다. 하지만 감독당국이 증권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자산운용사들도 자문형 랩 시장에 적극 뛰어드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윤창선 ING자산운용 마케팅본부장은 "자문형 랩은 단순히 일반 공모펀드와의 경쟁 관계가 아니라 고액 자산가를 위한 새로운 시장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자산운용사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자문형 랩이 10개 내외의 소수 종목에 집중하고 매매도 자주 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 분산 투자를 유도하는 운용사의 정체성이나 투자철학에 배치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사장은 "그동안 신영자산운용이 쌓아온 장기 가치 투자의 운용 철학과 자문형 랩은 서로 상충되는 측면이 많아 랩 자문업엔 진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정환/서보미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