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축구에서 배우는 기업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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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유연해야 한다. 상대에 따라,우리 수준에 따라,목표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전술만큼 변화무쌍할 필요는 없지만 똑같은 전략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 병력이 절대우위에 있지 않는 한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요즘처럼 환경 변화가 빠를 때는 더욱 그렇다.
소리 한바탕은 못해도 '귀명창'이 있듯이 월드컵 시즌이 되면 '눈명창'들이 나타난다. 공은 못 차도 작전은 이미 히딩크 수준을 넘어선 듯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듣다 보면 기업전략 얘기도 같은 선상에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전략은 유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써서는 안된다. 전쟁사를 보면 '배수진'을 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적도 있지만 반대로 싸울 공간을 스스로 좁혀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략의 유연성은 그 방향이 스마트할 때만 유효하다. 영리한 전략적 이동(smart strategic move)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대표팀의 예선 세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경기마다 전략이 달랐다. 목표가 달랐고,차용한 전술이 달랐고,결과도 천양지차였다. 그리스전은 목표가 승리였다. 그래서 전술 자체도 '맞짱 뜨자' 분위기였다. 한국팀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자 그리스팀은 위축됐다. 수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팀에 일격을 당한 아픈 추억을 갖고 있는 그리스팀은 이미 초전에 기가 꺾이며 제압됐다.
허정무호는 이 작전을 2차전에서 바꿨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목표에 있었다. '승리'가 아니라 '16강'이 목표가 된 것이다. '맞짱을 뜨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는 것'으로 전술목표도 달라졌다. 한국팀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했던 남미축구팀은 한국이 약하게 나오자 유전자 깊숙이 박혀 있는 '신나는' 축구를 하면서 한국팀을 압도했다.
문제는 3차전.한국팀은 다시 1차전 전략과 비슷한 방향을 잡았다. 1차 목표는 승리,2차 목표는 무승부였다. 이미 승리를 경험한 1차전 출전선수를 그대로 내보내 전술적으로도 변화를 꾀했다. 1,2차전과는 묘하게 다른 게임이 펼쳐졌다. 공격도 열심히,수비도 열심히.그러나 이 목표는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제골을 내주자,다시 1차전식의 '맞짱'이 나왔다. 그 결과가 역전이었다. 문제는 역전한 다음이었다. 다시 2차전식의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이 투입되며 수비가 보강되자 다시 아르헨티나전을 연상시키는 실수가 나왔다.
한국축구의 기본전략은 원래 '초장부터 맞짱'이다. 그것이 국제대회에 나가면서,또 우리 실력에 자신이 없어 항상 위축돼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결국 이 작전이 우리 체질에 맞는 것이다.
한국축구의 이런 전략적 특징은 한국 경영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적 경영은 본질적으로 도전적이었다. 단기 성과 위주의 경영은 아무리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더라도 우리와는 잘 맞지 않는다. 매출을 중시하고 경쟁자를 이겨야 하고 이왕이면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단,우리 기업이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전략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축구도 이번 월드컵을 발판으로 업그레이드되면 좋겠다. 축구는 아직 응용보다는 원래 우리 DNA에 맞는 전략을 밀어붙일 때다. 이번이야말로 한국축구가 세계 축구사 전면에 등장하는 사실상 첫 등용문이기 때문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
소리 한바탕은 못해도 '귀명창'이 있듯이 월드컵 시즌이 되면 '눈명창'들이 나타난다. 공은 못 차도 작전은 이미 히딩크 수준을 넘어선 듯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듣다 보면 기업전략 얘기도 같은 선상에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전략은 유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써서는 안된다. 전쟁사를 보면 '배수진'을 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적도 있지만 반대로 싸울 공간을 스스로 좁혀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략의 유연성은 그 방향이 스마트할 때만 유효하다. 영리한 전략적 이동(smart strategic move)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대표팀의 예선 세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경기마다 전략이 달랐다. 목표가 달랐고,차용한 전술이 달랐고,결과도 천양지차였다. 그리스전은 목표가 승리였다. 그래서 전술 자체도 '맞짱 뜨자' 분위기였다. 한국팀이 처음부터 강하게 나오자 그리스팀은 위축됐다. 수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팀에 일격을 당한 아픈 추억을 갖고 있는 그리스팀은 이미 초전에 기가 꺾이며 제압됐다.
허정무호는 이 작전을 2차전에서 바꿨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목표에 있었다. '승리'가 아니라 '16강'이 목표가 된 것이다. '맞짱을 뜨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는 것'으로 전술목표도 달라졌다. 한국팀의 저항이 거셀 것으로 예상했던 남미축구팀은 한국이 약하게 나오자 유전자 깊숙이 박혀 있는 '신나는' 축구를 하면서 한국팀을 압도했다.
문제는 3차전.한국팀은 다시 1차전 전략과 비슷한 방향을 잡았다. 1차 목표는 승리,2차 목표는 무승부였다. 이미 승리를 경험한 1차전 출전선수를 그대로 내보내 전술적으로도 변화를 꾀했다. 1,2차전과는 묘하게 다른 게임이 펼쳐졌다. 공격도 열심히,수비도 열심히.그러나 이 목표는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제골을 내주자,다시 1차전식의 '맞짱'이 나왔다. 그 결과가 역전이었다. 문제는 역전한 다음이었다. 다시 2차전식의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이 투입되며 수비가 보강되자 다시 아르헨티나전을 연상시키는 실수가 나왔다.
한국축구의 기본전략은 원래 '초장부터 맞짱'이다. 그것이 국제대회에 나가면서,또 우리 실력에 자신이 없어 항상 위축돼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결국 이 작전이 우리 체질에 맞는 것이다.
한국축구의 이런 전략적 특징은 한국 경영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적 경영은 본질적으로 도전적이었다. 단기 성과 위주의 경영은 아무리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더라도 우리와는 잘 맞지 않는다. 매출을 중시하고 경쟁자를 이겨야 하고 이왕이면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단,우리 기업이 세계적으로 부상하면서 전략도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것처럼 한국 축구도 이번 월드컵을 발판으로 업그레이드되면 좋겠다. 축구는 아직 응용보다는 원래 우리 DNA에 맞는 전략을 밀어붙일 때다. 이번이야말로 한국축구가 세계 축구사 전면에 등장하는 사실상 첫 등용문이기 때문이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