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이라는 용어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과 세계경제포럼(WEF),세계은행(WB) 등이 앞다퉈 순위를 발표하고 이를 언론이 대서특필하면서 우리 국민에게 매우 친숙해졌다. 하지만 데이터가 풍부함에도 어떤 나라가 국가경쟁력이 높은지는 명확하지 않다. 기관별로 평가 방식이 제각각인 데다 국가별 랭킹에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 국가경쟁력 순위

지난해 WEF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2008년보다 6계단 낮춘 세계 19위로 평가했다. 노동시장 불안정성이 커져 한국의 등급을 하향 조정했기 때문이다.

IMD의 데이터는 이와 딴판이다. 같은 기간 한국의 순위가 31위에서 27위로 높아졌다.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 샀다는 게 이 기관의 분석이다. 같은 시기 같은 나라의 경쟁력 변화를 두 기관이 정반대로 해석한 셈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WEF는 2005년과 2006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에스토니아 등의 순위를 홍콩과 프랑스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 IMD도 2005년 보고서에서 말레이시아가 독일 영국 일본 등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발표했다.

IMD와 WEF는 수시로 평가지표를 바꿔왔다. IMD는 8개 항목으로 경쟁력 요인을 분류하다 2001년부터 이를 4개로 축소했다. WEF 지표는 변화가 더 심하다. 2000년 이후 거의 매년 한두 개 평가 항목이 추가되거나 빠졌다. 매년 기준이 바뀌다 보니 지난해와 올해의 경쟁력을 시계열적으로 분석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상황이 다른 국가들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한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다. 비교우위와 경쟁 산업이 상이한 국가들을 한꺼번에 측정하다 보니 '평가를 위한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평가 항목별 가중치가 자의적이고 설문조사 대상이 선진국에 몰려 있다는 점도 기존 조사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새로운 지표가 필요하다"

각국 정부는 모호한 국가경쟁력 지표로 혼란을 겪고 있다. 자국의 상대적인 위치와 장단점을 기존 지표로 파악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 맞는지도 의심스럽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관계자는 "개발도상국 중 상당수가 IMD나 WEF의 자료를 참고해 국정 운영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며 "보고서의 오류가 정책 오류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국가경쟁력을 담당하는 각국 정부와 민간조직이 대거 참여하는 협력체인 세계경쟁력위원회(GCC)가 새로운 지표를 만들기로 한 것은 기존 지표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GCC는 한국산업정책연구원(IPS)의 모델이 가장 구조적 오류가 적다고 보고 이를 발전시켜 새로운 평가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국가와 연구기관 간 거대 네트워크를 통해 지표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게 GCC의 생각이다.

IPS는 2001년부터 각국 경쟁력 보고서를 내고 있다. IPS 보고서는 요약문,국가 경쟁력 구조,본문,순위,국가별 정보 등 5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국가경쟁력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방법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경영 여건 △생산 조건 △수요 조건 △관련 산업 등 물적 요인과 △근로자 △정치가 및 관료 △기업가 △전문가 △기회요인 등 9개 부문을 평가한다. 단순한 자료 수집이 아니라 KOTRA 현지 무역관을 통한 심층 인터뷰와 시뮬레이션의 과정까지 거친 후 최종 점수를 토대로 산출한다.

국가 간 비교도 인구와 국토면적 경쟁력 등을 감안해 9개 그룹으로 나눈 후 시행한다.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GCC가 올해부터 IPS에 지표를 추가로 제공하기 시작해 GCC-IPS 모델이 정착되면 세계적 권위를 가진 새로운 국가경쟁력 순위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