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씨(65)는 1991년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로 쓰러지자 주민세 등 2억1200만원에 달하는 각종 세금을 내지 않은 채 해외로 빠져나갔다.

체납자를 추적해 체납세금을 받아내기로 유명한 서울시 38세금징수과도 국적이탈 상태였던 정씨의 체납세금을 결손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 이민,외국 국적 취득자 등 국외 이주 체납자는 세금납부를 독촉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데다 국외 소유 재산을 국내법으로 처분할 수도 없어 체납분 징수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38세금징수과는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의 협조를 받아 정씨가 지난 4월 입국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씨는 당시 미국여권에 미국인 이름으로 입국했다. 체납세금을 받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서울시는 곧바로 정씨에 대한 출국 금지를 요청했고 외국인 신분에 따른 서류보완 등을 거쳐 출국 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출국 금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난달 미국으로 나가려던 정씨는 결국 공항에서 발이 묶이자 서울시에 세금 분할납부를 요청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정씨가 출국할 경우 영구도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씨의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정씨는 체납세금 2억1200만원을 전액 납부했다. 영구미납될 뻔했던 세금을 10년 만에 받아냈다.

서울시는 정씨 같은 국외 이주 체납자들에게 '귀소본능'이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체납자들이 외국에 살더라도 명절 등 특별한 날에 맞춰 귀국할 수 있다고 판단해 체납자 조사를 시작했다.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 때 일시 귀국자를 파악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서 특별근무를 하기도 했다.

조사과정에서 국외 이주자 중 일부는 새로운 외국인 등록번호를 받는 식으로 신분을 세탁해 재입국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25개 자치구와 합동으로 국외 이주 체납자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1만6818명 중 26.5%인 4455명이 외국인등록번호를 이용해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도 밝혀냈다.

국적별로는 미국이 1만1722명,캐나다 3363명,기타 1683명 등으로 이들의 체납액만 무려 425억원에 달한다. 서울시는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국외 이주자 1097명으로부터 한 달여 만에 13억원의 체납세금을 징수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