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이다. 정권의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에 대해 '국회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국회 통과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세종시에 투자하기로 한 기업들은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투자는 타이밍이자 시간 싸움이 아닌가.

세종시 수정안을 포기하는 건 민심 수습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가 세종시에 대한 국민투표는 아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야당은 국민들이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 것이라고 우긴다. 그런 논리를 따른다면 김대중 · 노무현 정권 시절 지방선거와 재 · 보궐선거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이긴 것을 놓고 햇볕정책과 행정도시 건설계획을 포기하라는 민의의 표출이라고 봐야 한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대운하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받은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국무총리와 9부2처2청의 세종시 이전,즉 수도분할이 지역균형발전을 가져온다는 논리는 허구다. 세종시 원안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적 쟁점이 됐고 감정과 자존심의 문제로 변질됐다.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를 육성하는 내용의 세종시 수정안은 충청지역은 물론 국가적으로 원안보다 훨씬 나은 것인데도 배척받고 있는 분위기가 통탄스럽다. 멀쩡한 행정부를 쪼개놓는 게 어떻게 지역발전이며 특정지역 주민들의 자존심을 살리는 일인가.

물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렇다고 잘못된 약속인줄 뻔히 알면서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을 외면하고 논리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2002년 대선 때 충청표를 겨냥, 급하게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워 그의 말처럼 재미를 봤다. 행정수도가 위헌판정을 받자 다시 행정도시 계획을 밀어붙였고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마지못해 끌려간 것이 세종시 원안이다. 노 대통령은 행정도시 기공식(2007년 7월20일)에서 "청와대와 정부, 정부부처 일부가 공간적으로 분리되게 된 것은 매우 불합리한 결과"라며 청와대와 국회까지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부처 분할의 비효율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세종시나 4대강 사업은 지방선거와 관계없이 추진돼야 마땅한 국가적 과제다. 이미 진행중인 4대강 사업을 그만두라는 것은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세종시와 4대강 사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세종시여야 한다. 행정부가 분할되는 경우 나타날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며 다시 되돌리기는 어렵다. 그건 국가적 재앙이다. 그러나 4대강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일까. 어쨌든 국회의원 각자가 세종시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는가를 기록해서 역사에 남겨야 한다. 국가적인 중차대한 문제를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국민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과연 국회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결정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가. 농민을 위한다며 결정한 쌀 관세화 유예 결과는 어떤가. 쌀은 남아도는데도 쌀 의무수입물량은 매년 늘어나게 돼있다. 과연 농민을 위한 옳은 선택이었던가.

세종시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 내의 이견(異見)이 해소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회 표결결과는 수정안 부결이고 결국 자동적으로 원안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

축대가 무너지는 현장을 보며 가슴만 졸여야 하는가. 천안함 폭침만이 재앙이 아니다. 나라 안에서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는 어뢰나 지뢰도 막아야 한다. 다시 한번 국가의 장래와 충청지역의 발전을 생각해야 할 때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