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한국-그리스전에서 공격수로 나선 박주영은 후반 41분 교체되기 전까지 빠른 스피드로 상대 문전을 뒤흔들었다. 그의 동작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눈에 띄는 게 아디다스의 노란색 축구화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파트너인 아디다스가 그의 발 구조와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특별 제작한 'F50 아디제로'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수 리오넬 메시는 보라색 아디제로를 신는다.

무게가 165g(270㎜ 기준)에 불과한 이 축구화는 발 한쪽 부분에만 힘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밑창과 뒤꿈치를 넓게 만들었다. 오우진 아디다스코리아 축구카테고리 부서장은 "윗부분은 초극세사 폴리우레탄 소재의 '스프린트 스킨'을 사용해 무게를 줄이고 착용감을 높였다"며 "밑창에 붙은 삼각형 모양의 징(스터드)은 가속력과 지지력을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월드컵 같은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는 '제품 진화의 경연장'이나 다름없다. 제품력은 선수의 실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성적=제품력'으로 인식된다. 당연히 매출도 급증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대회 때마다 신기술을 선보이며 제품 업그레이드 전쟁을 치른다.

정태성 스포츠앤스토리 대표는 "메가스포츠는 스포츠용품사와 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기술 전람회"라며 "후원 팀과 선수가 우승하는 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신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는 최고의 마케팅 툴"이라고 말했다.


◆축구공 · 신발의 변신은 무죄

무게 420~445g에 둘레길이 70㎝ 이내인 축구공도 대회 때마다 변신을 거듭한다. 아디다스가 올해 선보인 11번째 공인구 '자블라니'는 3D패널 7개를 고열 접합방식으로 이어 붙이고 표면에 미세한 돌기를 심어 킥과 드리블의 정확도를 높였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부터 공인구를 제작한 아디다스는 첫 작품 '텔스타'에 이어방수가죽 축구공을 잇달아 선보였다.

나이키는 1998년 브라질 공격수 호나우두를 시작으로 선수들의 발모양,경기 운영 방식,특기 등을 고려한 맞춤 축구화를 제작하고 있다. 이청용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신는 '머큐리얼 베이커 슈퍼플라이 Ⅱ'는 압력에 따라 앞쪽 스터드가 최대 3㎜까지 수축해 방향을 전환할 때 스텝이 꼬이지 않게 도와준다.

'산소탱크' 박지성이 신는 '나이키 티엠포 레전드 Ⅲ'는 캥거라이트 합성 가죽을 사용해 착화감을 극대화시켰다. 앤디 케인 나이키 축구화 디자이너는 "과학적인 연구와 선수들의 피드백을 기초로 신발을 개발한다"며 "가볍고 튼튼한 탄소 소재로 선수들이 마지막 5분까지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하는 우승 도우미"라고 설명했다.


◆유니폼도 과학의 총아

나이키가 제작한 올해 한국대표팀 유니폼의 무게는 독일월드컵 때보다 13%나 가볍고 흡수력도 일반 면셔츠보다 100배 뛰어나다. 공기 투과율은 초당 약 170㏄로 성인 남성이 한번 내쉬는 숨의 4배에 달한다.

푸마의 올해 유니폼 주제는 '날 것(raw stuff)'이다. 필립 트럴슨 푸마 팀스포츠사업부 총괄 이사는 "미니멀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손글씨체 느낌이 나는 백넘버 디자인을 적용했다"며 "파워메시를 활용해 통기성을 향상시키고 하의에 근육을 감싸는 타이즈를 부착해 움직임의 안정성도 높였다"고 말했다.

푸마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육상 100m 경기에서 우승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푸마 테시우스 Ⅱ'로 대박을 터뜨렸다. 정원진 푸마 러닝마케팅 팀장은 "볼트가 황금색 운동화를 양손에 들고 방송을 탄 지 1시간 만에 200만켤레가 판매됐고 베이징에서 푸마 매출은 10배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첨단 카메라업체도 스포츠를 잡아라


스포츠 이벤트는 캐논과 니콘 등 글로벌 카메라업체들의 치열한 홍보 무대이기도 하다. 캐논코리아컨슈머이머징은 최근 1000만화소와 고속촬영 기능을 갖춘 '익서스 300HS'를 내놨다. 지난 2월 니콘이미징코리아가 쿨픽스 S8000 등 신제품 8종을 내놓은 것에 대한 반격이다.

강동환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 사장은 "사진기자와 프로 사진가들이 사용하는 플래그십(최상급) 카메라는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출시하는 게 관례"라며 "스포츠 경기는 첨단 기술이 들어간 대표 기종을 시험하기에 가장 훌륭한 테스트 베드"라고 설명했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임원기/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