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해쳐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횡포를 적절히 견제하지 못하면 시장경제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 자유가 집단 이기주의를 허용하면 경제적 자유는 번영을 불러오지 못합니다. "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65)가 33년간 지켜온 강단을 떠난다. 이 교수는 한국경제신문이 주관하는 경제시험인 테샛(TESAT)출제위원장이다.

그는 '시장경제와 민주정치-자유와 번영의 딜레마'란 주제로 1일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고별 강연을 했다. 그가 이날 던진 메시지는 '민주정치가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면 시장경제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먼저 "자유와 교환이 시장경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시장경제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생업에 종사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시장에서 '교환'을 통해 조달한다는 것이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재산권 확립이다.

이 교수는 정치의 역할은 "재산권 보장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산권 획정(劃定)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정치라는 것이다. 예컨대 자유민주주의는 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인정하고 사유재산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집단 이기주의가 생겨날 가능성을 무엇보다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자유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보장하지만,정치적 자유는 집단 이기주의에 빠질 경우 사회를 '빈곤의 덫'에 빠뜨리고 재산권 구조를 그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군중은 효율적 자원배분으로 번영의 길을 향하는 현명한 집단일 수도 있고,비효율적 자원 이용으로 퇴행하는 근시안적 우중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아닌 이익집단 간 협상은 훨씬 더 큰 거래비용을 유발해 민주적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불합리한 집단 이기주의를 금지하는 것이 정치적 자유를 포기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와 집단 이기주의를 구별해내는 지혜가 더욱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단 이기주의를 적절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해 시민들이 스스로 현명한 선택을 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합리적인 시민이라면 부당한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시장의 성공적 작동을 보장하는 정치적 결정에 동참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그가 33년의 교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꼽은 것은 '강의'였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경제학 강의 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낙후됐다"며 "강의 수준을 높이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일자리에는 국적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일자리를 줍니다. 전 세계에서 일자리를 주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의료 관광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좀 더 개방을 해야 합니다. 싱가포르처럼 일류대학과 병원이 넘쳐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영리병원은 도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