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재정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연일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일본 증시는 21일 3개월여 만에 1만엔 선이 무너졌고 미국 다우지수도 1년 만에 최저치까지 폭락했다. 유로화 하락과 유럽 경제의 불황이 장기화되면 미국과 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경제 역시 동반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경기과열 우려가 높았던 중국은 금리인상과 위안화 절상 조치를 미루는 분위기이고 미국도 소매 판매지수가 급감하는 등 경기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여전히 균열 상태에 빠져 있고 스페인과 그리스 등 재정위기 국가에선 긴축조치들에 대한 노조와 야당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어 세계경제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오는 26,27일 영국과 독일을 잇따라 방문해 양국 재무장관들과 유럽 재정위기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

◆유로화 약세…아시아 수출에 '빨간불'

유럽 재정위기와 유로화 약세는 최근 이례적으로 고성장세를 누려 왔던 아시아 시장에 직격탄으로 날아들고 있다.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각국 증시는 21일 유럽 악재에 따른 수출부진 우려로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2.45% 하락하며 5개월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또 올 1분기 성장률이 13.27%(전년동기 대비)로 31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대만증시도 2.51% 떨어졌다.

중국의 경우 유로화 약세로 수출이 타격을 입어 긴축정책을 완화하거나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21일 보도했다. 중국의 대 유럽연합(EU) 수출은 총 2363억달러로 지난해 전체 수출의 19.7%를 차지했다. 이는 중국의 아시아에 대한 수출 다음으로 큰 비중으로, 중국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4.8%에 달하는 규모다.

이 때문에 최근 재정위기와 유로화 약세로 휘청이는 유럽 시장이 중국 경제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호주 ANZ은행은 "중국이 유럽 재정위기와 한반도 긴장 고조 등의 이유로 적어도 6월 말까진 위안화 절상과 추가 긴축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증권보는 사설을 통해 "중국 정부가 기준금리 인상을 올 하반기나 내년 이후로 연기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망했다.

일본은 유로화 약세로 엔고 문제가 또 다시 불거지면서 수출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 지난해 일본의 대EU 수출 비중은 전체의 12.5%에 이르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의 대유럽 수출에선 유로화 대비 엔화 환율이 유로당 120~125엔일 때 가장 수익성이 높다. 하지만 2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유로당 113엔대에 거래됐으며,최근 1개월 새 가치가 약 12% 급등했다.

◆뉴욕증시 1년 만에 최저치

대니얼 타룰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는 20일(현지시간) 연방하원 재무위원회 청문회에 앞서 서면으로 제출한 증언을 통해 "유럽의 재정위기가 확산되면 자칫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신용경색이 빚어질 수 있다"며 "유럽이 침체에 빠지면 미국 경기도 위축되는 등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날 뉴욕증시는 이 같은 우려가 확산되며 376포인트(3.6%)나 폭락했다. 하루 지수 낙폭으로는 작년 2월10일 이후 가장 컸다. 시장에 불확실성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거래되는 변동성 지수(VIX)는 전날보다 30% 급등한 45.79을 기록했다. 1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이날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주가가 20%가량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 경제권 중 더블딥(이중침체)의 위험에 처한 지역이 일부 있다"며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증시 불안감이 커지자 안전자산에만 투자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 0.1% 하락한 3.26%를 기록했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한국 호주 등 신흥국 통화가치는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급락했다.

◆혼란에 빠져 있는 EU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21일 "유럽 국가들의 부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유로존 개혁과 관련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사이에 이견은 없다"고 말했다. 전날 독일의 일방적인 공매도 발표로 EU 각국 간 갈등이 불거지자 뒤늦게 봉합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금융시장에 대한 과세를 늘리고 각국의 재정감축을 더 강화토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해 영국 및 프랑스와 거리를 뒀다. 재정위기에 빠진 남유럽 국가들은 민간소비보다는 공공지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재정개혁이 본격화될 경우 성장률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EU의 경제 태스크포스팀은 이날 첫 모임을 갖고 EU가 회원국의 예산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나섰지만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일부 국가들이 자율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맞서 진통을 겪었다. EU는 여전히 재정안정기금 중 4400억유로를 각국이 어떤 방식으로 부담해야 할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날 그리스에서는 노조가 이달 들어 두 번째 총파업을 벌이는 등 여전히 혼란이 계속됐다.

한편 WSJ는 이날 미국과 EU 당국자들이 유로화의 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할 가능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고 전했다. 올 들어 유로화 가치가 달러대비 17%나 떨어지면서 미국은 수출에 애를 먹고 있고 독일 등 일부국가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태완 · 이미아 기자/뉴욕=이익원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