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으로 추정되는 국내 공구유통 시장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맞붙었다. 대기업 계열의 MRO(자재구매 대행) 회사들이 공구유통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데 대해 중소 공구유통상들이 '중기 영역을 침범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SSM(기업형 슈퍼마켓) 신설을 놓고 지난해 불거졌던 '중기 영역' 논란이 재연되는 모양새다.

◆"대기업 진출 막아 달라"


16일 업계에 따르면 중소 공구상 연합체인 '한국산업용재공구상협회'는 지난달 5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대기업 계열의 MRO 회사들이 공구유통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게 해 달라"며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중소기업이 사업조정을 신청한 것은 대형 유통매장의 SSM · 주유소 진출과 관련해 영세 슈퍼마켓,지방 주유소 업체들이 조정신청을 낸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사업조정'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상권에 진출해 중소기업의 경영 안정을 위협할 경우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의 상권 진출을 일정기간 늦추거나 사업 축소 등을 권고하는 제도다.

이번 사업조정 대상은 LG 계열 서브원과 삼성 계열 아이마켓코리아,포스코 계열 엔투비,코오롱 계열 코리아이플랫폼(KeP) 등 4개 MRO 회사다. 중소 공구상들은 이들 MRO 회사가 공구유통 사업을 확대하면서 영세 공구상들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경수 공구상협회 전무는 "국내 5만여개 공구유통상의 대부분이 구멍가게 수준의 영세업체들인데 MRO 회사들이 유통사업을 확장하면 다들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실제로 지난 3월 200여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0%의 기업이 최근 3년간 매출이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MRO사,"10년째 해온 사업인데…"


이 같은 중소 공구상들의 주장에 대해 MRO 회사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대기업을 대상으로 필요한 자재를 온라인으로 구매해 공급하는 MRO사업 특성상 중소 공구유통상과 업역이 겹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A사 관계자는 "(MRO는) 대기업에서 필요한 공구를 직접 제조업체에서 받아 공급하는 게 아니다"며 "대기업에 납품하기 힘든 중소 공구유통 업체들도 MRO를 통해 대기업 시장을 뚫을 수 있다"고 말했다. MRO 회사들은 또 2000년 초반부터 10년째 공구를 (대기업 등에) 공급해 왔는데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측이 팽팽한 의견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중기중앙회는 일단 이달 말까지 공구상협회와 MRO 회사들 간 협상을 중재한 뒤 자율 합의를 못 볼 경우 중소기업청에 강제조정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지난 10일 열린 공구상협회와 아이마켓코리아의 첫 번째 협상에서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강제조정 결과에 따라선 확전될 수도


중기청의 강제조정까지 갈 경우 전망은 엇갈린다. 방 전무는 "지난 3월 서브원이 창원에 대형 공구유통 매장을 낸 것과 관련,중기청에서 사업조정을 통해 3년간 중소 공구유통상들의 고객사를 빼가지 말라는 권고를 냈다"며 "이번 사업조정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브원 관계자는 "사업조정 제도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에 새로 진출했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인데 이를 MRO 사업에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내부 법무팀의 결론"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공구유통 업체들의 사업조정 결과에 따라서는 MRO 회사들이 취급하는 다른 품목으로 분쟁이 확산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MRO 회사들이 취급하는 물품은 볼펜,복사지 등 소형 자재부터 복사기,PC 등 대형 자재까지 100만개 이상에 달한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