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그리스 경제 위기는 많은 이들에게 민주주의의 한계를 느끼게 하고 있다. 그리스는 민주주의에 기생하는 맹독(猛毒)인 인기영합주의의 희생양이 됐다. 그리스 정당들은 좌파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과 우파인 신민주주의당 모두 선심성 정책을 남발했고 시민들은 그런 정치인들에게 환호했다. 이들은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내몰았다. 하지만 성급한 일반화는 곤란하다. 모든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3일 미국 뉴저지주 유권자들은 반(反)포퓰리즘 후보를 주지사로 뽑았다. 2009년 말 현재 뉴저지의 재정 상황은 그리스와 유사했다.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재정 상태는 50개 주 가운데 최악이었다. 조세 부담으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돼 세입이 줄었지만 흥청망청 예산을 집행해 왔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크리스 크리스티 후보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했다. 기업활동을 활성화하고 재정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초 크리스티는 당선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뉴저지는 민주당 텃밭이었다. 대선 때마다 손쉬운 승리를 거뒀을 뿐 아니라 1997년 이래 주지사 공관을 독차지해 왔다. 크리스티는 파상 공세에 노출됐다. 흑색 선전이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거물급 민주당 정치인들이 낙선 운동에 나섰다. 게다가 그의 공약은 지출 사업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크리스티를 선택했다.

지난 6일 총선에서 영국 유권자들도 같은 결정을 했다. 영국은 그리스에 버금가는 재정 위기에 처해 있다. 2009년 현재 재정적자는 10780억파운드,정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60%대에 달했다. 물론 과도한 정부 지출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당인 노동당은 정책 전환을 망설였다. 당면한 경제난 극복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논리였지만 선거에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란 정치적 고려도 한몫을 했다.

이에 비해 보수당은 달랐다. 달콤한 약속들보다는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들을 내놨다. 연금 수령 연령 상향 조치를 정부 방침보다 10년 앞당기겠다고 했다. 복지 정책 수혜자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을 고통 분담에 동참시키겠다고 했다. 의원 수를 10% 줄이고 경비를 감축하겠다고 했다. 정부 기구의 규모와 수도 축소하는 한편 고위 공무원 봉급을 삭감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 국민들은 그런 보수당의 손을 들어줬다. 당은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13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 제1당이 됐다.

영국과 뉴저지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방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재원이나 구체적 실천계획에 대한 검토 없이 무책임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중앙당도 인기 영합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나라당은 연간 1조2000억원이 소요되는 정책들을 발표했다. 민주당도 공약 이행 재원 마련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공약집을 내놓았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을 가중시켜 가계 부채와 국가 채무로 인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 경제를 위협하려 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언론과 학계,그리고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재정건전성 달성을 선거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 포퓰리즘에 편승하는 후보와 정당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 공약에 소요될 예산 확보 방법과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34%가 폭등한 지방채무 잔액을 해결할 방안을 추궁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어 지방 선거에서 뉴저지 주지사 선거와 영국 총선의 기적을 재현해낼 수 있기를,그리고 우리 경제가 그리스의 전철을 밟는 것을 막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윤계섭 < 서울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