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정치가 무엇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선생님 한 분이 우리들에게 가끔 50년대 자유당 시절의 정치 부패를 비판하면서 4 · 19 학생혁명의 배경과 민주화 운동에 대해 격앙된 목소리로 설명하시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당시 우리들은 선생님 말씀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채 군에서 갓 제대한 삼촌의 무용담 정도로 여기곤 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됐고,1980년대 초 당시 민주화를 열망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대학생들의 데모 역시 늘어났다.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도 정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시절 은사님 이야기가 나왔다. 몇몇 친구들은 "선생님께서 우리들을 어른으로 대우하셔서 그런 정치 이야기를 하시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찾아 뵙는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그때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했던 가르침은 자유와 인권,정치와 국민으로서의 책임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들에게 몸소 보이시고 깨달음을 주고자 하심이었으리라.바로 이 때문에 그분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존경하는 은사님으로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렇듯 스승이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귀감이 되는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뉴스 보도를 보면 일부 선생님들이 교원단체 가입 명단 공개 논란에 휩싸여 있다. 명단 공개 불가를 판결한 법원의 결정과 이에 반발하거나 지지의사를 표하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은사님을 모시는 제자이자 학부모의 일인으로서,사회적 존경의 대상인 선생님들이 소속된 교원단체의 명단 공개에 논란이 있었다는 점과 이것이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 보도의 초점에 따라서는 쟁점이 되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알기 어렵거나 교원단체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또는 부모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는 표현이 흔히 쓰이곤 한다. 한마디로 책임을 지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자신들이 소속된 교원단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판결은 교원단체에서 수행하는 활동들에 대해 의혹을 갖게끔 한다. 21세기 선진 한국의 주역이 될 미래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라면 그들이 신념을 갖고 하는 일에 자신의 이름이 공개되는 걸 꺼려서는 안될 것이다.

한 사람의 지식 수준뿐만 아니라 인격 및 도덕적 소양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훌륭한 교육자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법이다. 내일이면 스승의 날이다. 어린 시절 코흘리개 초등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신념을 전하기에 주저함이 없으셨던 은사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황수 GE코리아 대표 soo.hwang@ge.com